남의 일기 스물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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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2남의 일기 스물아홉 2021. 10. 21. 00:21
내 맘대로 시즌 2를 열었다. 이유는 없고, 두 달가량 일기를 안 썼기 때문이다. 재정비를 꾀한 것도 아닌데 마치 시간을 갖고 돌아온 것처럼 보여져서 좋았다. 바쁘기는 했다. 나는 이직을 했고, 또 이직이어서 여유가 없었다. 일주일 동안 한 시간씩 일찍 출근을 하고, 나름 긴장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게다가 주말마다 잡아 놓은 약속들을 꾸역꾸역 나가면서 체력을 쥐어 짜냈다. 자책해 봤자 소용없었다. 낸들 백수일 줄 알고 잡았던 약속들이지 않겠는가. 사람은 참 간사하다. 5개월 동안 돈 받는 백수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뭘 안 할 바엔 차라리 일을 하는 게 낫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고, 그렇게 입사를 했고, 나는 딱 48시간만에 마음이 바뀌었다. '그래도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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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적 성향남의 일기 스물아홉 2021. 8. 31. 11:56
강박증까지는 아니지만, 나는 강박적 성향이 있다. 물건은 항상 규칙에 맞게 제자리에 놓여 있어야 하고, 샤워를 한 후에는 몸을 더럽히는 일을 하지 않는다. 야외에서 친구들이 내 어깨에 손을 얹거나 가방을 만지면 티는 못 내지만 뭐라도 묻었을까 불편하다. 간혹 주식 끝자리 수를 '0'으로 맞추려는 숫자 강박도 있는 편이며, 오빠가 길거리의 표지판을 만진다거나 하면 곧바로 화를 낸다. 이 외에도 커피 캡슐을 바로바로 채워 넣는다거나, 장롱이 열려있는 꼴을 못 본다거나, 인덕션이 빛이 나도록 닦는다거나 하는 행동들을 한다. 이게 타고난 기질이라는 사실을 나는 얼마 전에 알았다. 8월 27일은 처음으로 정신과(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한 날이었다. 7장의 질문지에 성실히 응한 다음. 양쪽 손목, 한쪽 발목에 집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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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남의 일기 스물아홉 2021. 8. 15. 14:09
중, 고딩 때는 상황이 좀 나았다. 반 친구가 스무 명 남짓. 그래도 갑자기 두 배나 늘은 것이었다! 가장 많았을 때가 내가 반 번호 18번이었을 때. 이 씨 다음으로 최 씨가 두 명, 황 씨가 한 명 있었으니 문과반 전체는 21명이었다. 그렇게 문과반 하나, 이과반 하나, 그리고 4총사(레알 4인)로 구성된 실업계반 하나가 학 학년의 전부였다. 당시 이과는 19명이 전부였는데, 그래도 19라는 숫자는 굉장히 소중한 것이었다. 내신 1등급이 딱 1명만 나올 수 있는 숨 막히는 인원수! 무조건 농어촌 전용(내신)으로 대학을 진학해야 하는데 말이다. 수능을 잘 본다는 건 사교육 없는 시골에서는 하늘에 별 따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ebs가 없었다면 우린 정말 바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한 명이라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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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예찬남의 일기 스물아홉 2021. 8. 14. 14:28
백 번 생각해도 내 자존감은 모두 시골에서 키워냈다. 우리는 소수의 인원이었다. 그리고 다들 고만고만했다. 초등학교 때 내 친구는 딱 여덟 명이었다. 성비로 굳이 나누자면 나를 포함해 여자는 일곱, 남자는 둘. 6년 동안 내 사진첩에는 뉴페이스 하나 없이 항상 이 아홉 명이 있었다. 체육 시간이면 여느 학교처럼 남녀 따로 편을 갈라 흩어졌다. 그런데 남자가 고작 둘 뿐이니 축구를 하려고 해도 한 명은 만년 공격수, 한 명은 만년 골키퍼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구도는 승부차기 연습 용으로는 기가 막힌 포지션이었지만, 나라도 그 쓸쓸함을 달래줄 걸 싶기도 하다. 그래서 점심시간마다 에너지가 흘러 넘쳤다. 급식실에서 전투적으로 밥을 먹는 남자 애들이 많았다. 1학년 걸음마부터 6학년 형아들까지 전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