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기 스물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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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마음남의 일기 스물아홉 2021. 11. 5. 21:47
마음이 답답하거나 생각 정리가 필요할 때, 대체로 바다나 산에 간다. 산과 바다는 높거나 넓다. 어쨌거나 커다란 품을 가진 그들에게 콩알만 한 나를 비교하러 가는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복작대다 보면, 이상하게 내 마음도 비례하여 함께 작아진다. 그래서 우리들은 필연적으로 마음 쉴 곳을 찾게 된다. 물 한 바가지 시원하게 뿌려 먼지를 싹 날려 버리듯 아주 많은 양의 물을 담고 있는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시간이 항상 없다(?). 몸을 움직여 산과 바다로 갈 수 없다면 다른 방식으로 찾아야 한다. 산과 바다만큼 커다란 공간을 방문해야 한다. 그런 공간이 있을까? 내 생각엔 있다.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철학, 세계사, 코드 진행 등등 이렇듯 큰 공간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고 있으면 산,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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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남의 일기 스물아홉 2021. 11. 1. 18:38
성수가 제주에서 돌아왔다. 그는 올해 제주만 열 번을 다녀온 듯하며, 평생 타 볼 비행기를 그는 코로나 시국에 몰아서 타는 듯했다. 김포공항으로 돌아오는 길, 어김없이 전화가 왔다. "유리야~ 필요한 거 있어?" "아니~ 없어." 과연 없었을까. 날이면 날마다 오는 면세점 찬스가 아니기에 매번 화장품을 부탁했었다. 문젠, 나도 안 써 본 화장품을 부탁했다는 것이며 둘 중에 '비교해 보고' 괜찮은 것을 사 오라는 선택지를 주었다는 것인데 결국 그가 선택한 립스틱과 쉐도우들은 모두 내 친척동생들의 손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그는 빈손으로 오진 않는다. 바보 같은 나는 매번 기대를 안 하면서도 꼭 기대를 하게 된다. 그가 야심 차게 꺼내 든 것은 초콜릿이었다. 근데 이제 알코올을 곁들인... 동일 세 박스,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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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모두 주인공이 되려 애쓴다남의 일기 스물아홉 2021. 10. 31. 13:17
난 종종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다.편안한 마음을 위해 돈을 버는데,돈을 벌려고 불편한 마음이 되곤 한다.마음이 여유롭고 멋있는 내가 되고자 돈을 버는 것뿐인데,왜인지 갖고 있는 물건 퀄리티만 계속해서 높아지는 느낌.정작 나의 퀄리티는 레벨업 속도가 더딘 느낌 있지 않은가.어떨 땐 돈을 번다는 환경 자체가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어쨌든 회사는 성과가 있어야 하고, 그에 맞춰 나 자신이 성과주체가 되어야 하니. 물론, 우린 타인을 위해서도 돈을 벌고일이 주는 가치를 생각하기도 한다.일은 필연적으로 다수의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어서나만의 세상을 깨뜨리고, 다른 타인들을 생각하게도 한다.난 일이 주는 가치를 알고도 있다. 이번 주말은 생각이 많은 이틀이었다.김성수 없이 혼자 있었으니, 아마 오랜만에 나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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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남의 일기 스물아홉 2021. 10. 25. 18:49
자랑은 못되지만 난 명품이 진짜 없다. 20대 중반까지는 돈을 대체로 여행하는 데 썼다. 순간적이고 일회적인 소비에. 저축도 물론 없었기에 돈을 써서 남은 것들은 모두 내 추억 속에만 있다. 김성수를 만나 가장 득을 본 소비 습관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돈을 쓰게 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잘 자기 위해 베개를 열 개는 사서 써 본다. 그래서 20대 후반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소비는 집 안에 있다. 30만 원짜리 샤워 호스, 60만 원짜리 가습기, 100만 원짜리 맞춤의자 등 대부분 씻고, 자고, 앉고, 숨 쉬는 것들에 돈을 썼다. 물론 여전히 저축은 미비했다. 그리고 서른, 나의 소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집을 사기 위해 혼인신고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언감생심 서울을 꿈꾸는 것은 아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