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기 스물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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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림과 사당역남의 일기 스물아홉 2021. 11. 19. 08:37
나는 아침마다 싸움의 현장을 목격한다. 환승역인 신도림역에서. 매일 신도림역엔 1호선을 탔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압이 차오를 대로 차올라서 한번에 분출되는 모습이다. 서로서로 밀었다고 욕을 하고 어깰 밀친다. 어떤 남자는 손을 번쩍 들어올려 뒷사람을 때리려는 시늉까지 한다. 그냥 성격 나온 것이다. 나온 만큼 빈 공간이 된다. 나는 여유롭게 올라탄다. 비가 오지도 않았는데 창문에는 물이 서려 있다. 얼마나 많은 입김들이 모인 것일까. 탁한 공기를 느끼며 조용히 나의 초년 시절을 떠올려 본다. 집을 얻기도 전에 취업이 됐었다. 그래서 잠시 인천 친구의 집에서 출퇴근을 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출근하는 데만 1시간 30분이 걸렸다. 지나치는 역을 다 셀 수도 없었다. 친구는 매일 새벽 6시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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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김치남의 일기 스물아홉 2021. 11. 14. 12:14
우리 엄만 요리를 못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도 치킨을 자주 시켜주곤 했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다. 어른이 되고 새우 알러지가 심해진 나는 김치 젓갈조차 탈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김장철엔 엄마에게 새우젓을 뺀 김치를 따로 부탁하곤 한다. 그렇게 작년에 시골에서 대량의 김치가 올라왔다. "요즘 배춧값도 비싼데, 너무 감사하다!" 김성수가 말했다. 갓 버무린 김장 김치의 맛은 얼마나 기가 막히던가! 수육을 삶아야 하나, 흰쌀밥을 지어야 하나 며칠 전부터 행복한 고민을 했더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엄마의 김장 김치는 맛이 없었다. 맛이 없다는 게 아니고 맛 자체가 없는, 그러니까 신기하게도 無(없을 무) 맛이었다. "유리야... 신기해. 아무런 맛이 안 나!!" 나는 무슨 소린가 했다. "뭐야... 코로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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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남의 일기 스물아홉 2021. 11. 11. 22:34
전 직장과 지금 회사를 비교하자면, 극명한 장단점이 있다. 아니, 지금 회사가 훨씬 더 낫긴 하다. 그래도 난 전 직장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는데 (물론 욕은 하루 종일 할 수 있음) 이유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데 있다. 월급은 둘째치고 (사실 첫 월급 치고는 많이 받은 편) 기계처럼 편하게 일을 하기보다는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그러니까 복잡하게 일을 했다. 그게 참 좋았다. 늦은 사회생활만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욕 하나만 하자면 전 직장은 나에게 야근을 요구했다. '출판사는 다 그렇다'라는 말을 무슨 김밥 옆 단무지처럼 말하듯. 물론, 난 안 했다. 그러니 전 직장은 나에게 좋은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나도 내 역할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피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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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남의 일기 스물아홉 2021. 11. 8. 22:47
내일도 난 내 일을 하고 있겠지. 뭐야... 라임 오졌잖아. 난 내 일이 하면 할수록 재미있다. 아직 배울 게 많아서 정신없고, 그래서 어려워도 결국엔 재밌다. 내가 사랑하는 분야 안에서 레벨업을 한다는 것은 꽤 지루할 틈 없는 하루를 선물해 주기도 한다. 얼마 전 망원동에 산책을 갔다가 우연히 독립서점에 들르게 됐다. 최근엔 독서의 'ㄷ'조차도 실행하지 않고 있던 참이었다. 게다가 다시 편집 초보자가 된 나는 한 분의 디자이너를 괴롭히고 있었다. 이 책이 눈에 띄었다. 몇 권의 책을 더 샀고, 집에 와서 가장 먼저 이 책을 펼쳤다. 킥킥킥, 웃으면서 재밌게도 봤다. 디자이너(저자)가 욕하는 몇몇의 상황을 내가 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난들 그러고 싶었겠는가... 적응하기도 바쁘고 이전과는 너무 다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