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종종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다. 편안한 마음을 위해 돈을 버는데, 돈을 벌려고 불편한 마음이 되곤 한다. 마음이 여유롭고 멋있는 내가 되고자 돈을 버는 것뿐인데, 왜인지 갖고 있는 물건 퀄리티만 계속해서 높아지는 느낌. 정작 나의 퀄리티는 레벨업 속도가 더딘 느낌 있지 않은가. 어떨 땐 돈을 번다는 환경 자체가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회사는 성과가 있어야 하고, 그에 맞춰 나 자신이 성과주체가 되어야 하니. 물론, 우린 타인을 위해서도 돈을 벌고 일이 주는 가치를 생각하기도 한다. 일은 필연적으로 다수의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어서 나만의 세상을 깨뜨리고, 다른 타인들을 생각하게도 한다. 난 일이 주는 가치를 알고도 있다. 이번 주말은 생각이 많은 이틀이었다. 김성수 없이 혼자 있었으니, 아마 오랜만에 나에 대한 생각만 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은 수단이 목적과 크게 다르진 않다. 간혹 그 생각에 만족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에 대한 불만은 항상 있다. 연말 때문인가... 의미 없이 새사람 새시작 다짐을 할 때가 다가오는 탓인가... 수단과 목적을 합체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나라면 오죽 좋으련만. 골머리 앓는 머리 쓰기는 방어기제마냥 나를 스마트폰 속으로 밀어 넣고, 산책과 독서할 시간을 예능과 맥주로 밀어 넣는데, 퇴근 후 쉰다는 명분 속에서도 마음 한켠은 계속 불편하니 결국 또 움직임 없이 심오한 생각들만 변비처럼 가득 찬 하루가 됐다. 우린 모두 삶의 주인공이 되려 애쓴다. 요즘은 자아실현을 다른 사람들의 인기투표를 얻는 것처럼 할 때도 있다. 나라고 다르진 않다. 나도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고 있지는 않을까. 언젠가 읽었던 고전소설에서, 모든 작가들은 주인공이 되고 싶은 허영심에 글을 쓴다고 했다. 난 인기가 있을 건 아니니까 주인공은 안 되더라도, 주인공이 되고 싶은 고민에 글을 쓰고 있다고는 생각한다. 사실, 나의 궁극적인 인생의 목표는 웃기게도 싯다르타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물 흐르듯 좋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강인함. 좋은 이념을 따라 모든 걸 옳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냥 그 순간에 나로 있어서, 그래서 합치된 마음속의 주인이 나라서. 그 평온한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그 마음. 그 더럽게도 힘든 선인의 마음을 우습게도 목표로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앞으로 겪어 갈 경험, 실패, 쓴맛, 불행을 감사한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싶었다. 나는 행복하기만 한 미래를 목표로 갖지는 않는다. 결국 평온한 마음을 쌓고 싶은 것뿐인데 불안의 반사작용으로 중독 활동들을 습관처럼 반복하고 그렇게 자아실현은 점점 멀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내일 출근을 잊기 위해 순간 재밌는 영상들을 보고, 재즈 레슨이 어려워 연습 대신 라면을 끓이고 있는. 자잘자잘한 불안 마음-중독 습관이 오늘도 뇌 속에서 더 단단한 결합을 이루어내고 있다. 더 강력해지는 이 습관들을, 유혹에 약한 내가 언제쯤 멋지게 이겨낼 수 있을까. 왜 서른을 먹고도 자아실현을 고민하고 있냐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