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기 서른하나
-
꽃과 식물남의 일기 서른하나 2023. 11. 3. 14:33
꽃집을 할 것도 아닌데, 3만 원이 넘는 꽃도감 책을 사서 보는 애늙은이 취미의 삼십 대 초반이 있을까? 있다. 바로 나다. 꽃은 종류별로 봉우리를 피우는 방법과 속도, 물 주기가 각기 다르다. 식물도 종류별로 잎이 나는 모양과 볕, 물을 좋아하는 정도가 다르다. 꽃을 화병에 꽂으면서, 식물에 물을 주면서 그들마다의 생김새와 취향, 약점 정도를 파악하는 게 꽤나 재밌다. 아마 저 멀리 다른 행성에 사는 외계인이 초월적인 시력을 가지고 인간 세상을 훔쳐본다면, 우린 거의 똑같이 생긴 쌍둥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종으로 구분하자면 다 비슷비슷하겠지만, 디테일하게 들여다보면 다양함도 차이점도 천차만별이다. 꽃마다 색을 내는 정도가, 식물마다 푸르름의 정도가 전부 다르다. 그 미세한 색..
-
적응의 유무남의 일기 서른하나 2023. 11. 1. 18:04
옛날엔 아이 한 명 더 낳는 것을,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되는 것으로 퉁쳤다. 이 말인즉, 밥만 잘 먹여 성장시키면 아이 하나를 잘 키운 게 된다는 말과 같겠다. 요즘은 좀 다르다. 딱 하나만 낳아 남부럽지 않게 키우거나, 이마저도 부담감에 안 낳는다. 먹을 것을 해결하는 것은 이제 충분히 간단한데, 그 외에 알파를 더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안정적이게 돈을 벌어 그 돈을 여유 있게 쓰며 즐기는 삶이 가치 있는 세상이 된 것이겠다. 생물학적인 관점에서도 비슷하다. 생물학에서 번식은 그 환경에 적응을 잘했다는 의미와 같다. 자식을 많이 낳을수록 그 종은 환경에 완벽히 적응에 성공한 것이다. 여기서 뇌가 하는 역할도 똑같다. 자연에 잘 적응하고 생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
-
양치질남의 일기 서른하나 2023. 10. 31. 10:55
양치할 때 헛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으면 잠시 쉬어야 한다. 만약 섣부르게 다시 양치질을 시도하면, 눈가에 가득 차오르는 눈물과 함께 벌게진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종종 겪는 일인데도 참 고통스럽다. 너무 과하지도, 급하지도 않게 하는 양치가 왜 이렇게 매번 어려운 것일까. 성수와 나는 거의 싸우지 않는다. 꼬박 10년을 가득 채우도록 만나는 동안 제대로 싸워 본 횟수는 한 손에 꼽는다. 그러다 얼마 전, 성수가 화를 냈다. 나로 인해 힘든 일. 나를 배려하다가 참아왔던 마음을 꺼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서로 잘 맞아서 안 싸웠다기보다는, 그저 성수가 나를 많이 이해해주고 있었던 거다. 말도 안 되게 첫눈이 빨리 찾아왔던 10월 초의 어느 강원도 호텔, 나는 언제나처럼 이것저것이 다 하고 싶었고, 성수..
-
내 세상남의 일기 서른하나 2023. 10. 28. 21:07
나를 긍정하기란 쉽지 않다. 얼굴도 안 예쁜 것 같고, 키도 작고, 돈도 많지 않은 것 같고. 각 잡고 나열하자면 하루 꼬박도 부족할 것 같다. 그렇다고 나를 부정하는 일 또한 쉽진 않다. 먹고살 만큼은 돈이 있는 것 같고, 얼굴도 아예 못 생긴 건 아니지 싶고, 키도 이만하면 귀여운 축 아닌가 정신 승리도 가능하다. 이 애매한 기준을 매일같이 넘나 든다. 그런데 도대체 이 기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연예인과 하는 비교인지, 또래 친구와 하는 비교인지, 한강뷰 아파트 주인과 하는 비교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그러다가 결국, 이 비교의 시작은 내가 나와 하고 있다는 자각에 이르게 된다. 나의 세상은 결국 나의 생각이다. 다르게 말하면, 각자 바라보는 세상이 모두 다르다. 예를 들어, 폭포수가 쏟아지는 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