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기 서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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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남의 일기 서른하나 2023. 10. 18. 13:49
보석의 색이 아름다운 것은 소량의 불순물 금속 원자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인생의 이치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완벽함보다는 약간의 잉여나 하자가 특별함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최근에 재즈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는데, 완벽한 코드 진행보다는 불협 화음을 중간에 섞는 게 더 재밌게 들렸다. 과학자들에게 안타까운 실수는 새로운 발견을 하게끔 만들고, 어린아이들의 꾀죄죄한 밥풀 묻은 얼굴은 웃음을 유발한다. 딸기를 수확하다가도 덜 익은 비상품은 순간의 입속을 달콤하게 만들고, 달리기 꼴등이 있기 때문에 1등 한 어린이의 뿌듯함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가끔 김성수가 뀌는 방귀로 험악했던 분위기가 풀어지기도 하고, 꽃다발 속 툭 튀어나온 한 송이의 줄기가 시선을 확 사로잡기도 한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잉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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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일기를 안 쓴 이유남의 일기 서른하나 2023. 10. 17. 22:17
1. SNS에서 일기를 쓰다 보니 재밌게 읽고 있다는 말을 듣는 건 기분이 째졌지만, 자꾸만 자랑하는 글을 쓰게 됐다. 2. 어디선가 책에서 읽었던 글을 반복해서 쓰고 있었다. 3. 나를 꾸며대는 말을 쓰고 있었다. 4. 그래서 또 한 번 버릴 때가 됐구나 싶었다. 5. 정신 분산시키지 말고, 내 일상에 집중해서 한 번쯤 살아봐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가졌던 시간은 좋았다. 어떻게 더 좋았는지 설명할 재주는 없지만, 마음이 편하고 여유로워졌다. 평소에도 나는 '저세상 차분함'이란 소리를 가끔 듣는다. 하지만 그들이 못 보는 내 가슴속 폭풍우가 있다. 아주 거센 혼동의 도가니. 내가 판단할 때 정신 분산, 시선 분산이 근본적인 이유인 것 같았다. 집에 TV는 없지만 대행으로 유튜브 릴스를 미친 듯이 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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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가 쓴 일기를 몰래 훔쳐보았다남의 일기 서른하나 2023. 10. 16. 21:01
2023년 10월 16일. 월. 서울. 쌀쌀함. 참으로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무얼 써야 할지 모르겠다. 내 안에 목소리는 가득하다. 일기감으로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유리에 대해서 써 보자. 가장 익숙한 존재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여기서나마 낯설게 바라보고 싶다. 이유리. 우리가 만난 건 2012년 어느 봄날로 기억한다. 내가 알바하던 곳에 나보다 약간 늦게 들어왔다. 작은 키. 얇은 뼈대. 마른 몸. 그것을 잊게 만드는 명료한 목소리와 차분한 태도는, 내겐 매력으로 다가왔던 듯하다. 남자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른에게 주눅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뻣뻣한 것은 아니다. 목소리처럼 행동도 예의바르고 정갈하다. 흔들림 없는 눈동자처럼 배움과 일손이 빨랐다. 참 신기한 존재였다. 그녀보다 3살이 더 많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