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기 서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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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반남의 일기 서른하나 2023. 11. 16. 22:53
최근 2년간 김성수가 저지른 일들은 다음과 같다. 1. 커튼을 치고 신나게 침대 위로 날아오르다 이불속에 숨어 있던 내 새끼발가락 골절시키기 2. 초보 운전 김성수가 음주운전자로부터 뒤에서 받치기를 당해 보조석에 있던 이유리 갑상선 기능 저하증 폭발 3. 먼저 코로나에 걸려와 나에게 전파, 새 직장 첫 출근도 못하고 목에 칼 백 자루가 한꺼번에 꽂히는 듯한 아픔을 선사 그리고 최신 소식, 4. 요즘 유행한다는 그 독하디 독한 독감에 걸려 너도 이미 잠복기일 수 있다며 나에게 미리 겁주기 시전 함께 살면 기쁜 일도 함께, 나쁜 일도 함께 나누게 된다.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전파 현상이다. 독감이 그대로 나에게 옮겨지듯, 재밌는 얘기도 웃음으로 그대로 나눠진다. 샤워 후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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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남의 일기 서른하나 2023. 11. 15. 18:20
어제도 김성수는 집들이 선물을 고민했다. 회사를 옮긴지 꽤 되었고, 아는 사람도 많아지면서 이삿집에 초대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매번 고민은 하지만 그 고민은 성수의 몫이 아니다. 선물은 매번 내가 고르기 때문이다. 센스가 없는 성수의 손에 맡겼다간, 그에게 다가와 준 소중한 친구들을 다시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집들이 선물은 거의 성공적이다. 그 성공의 비결은 무조건 내가 지금 갖고 싶은 것을 고르는 것이다. 성별이 비슷할 때 성공 확률이 더 높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브랜드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지금 유행하는 브랜드를 한두 개 정도 알아두면 좋다. 남자는 그냥 비싼 술을 사 주면 대부분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갖고 싶은 걸 선물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당장 내가 사서 쓰고 싶지, 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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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손님남의 일기 서른하나 2023. 11. 13. 22:32
나는 시댁에 가면 물 한 방울 손에 묻히지 않는다. 내가 눈치 없이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주방에 얼씬도 못하도록 어머님과 형님이 철벽 방어를 하기 때문이다. 명절에 시댁을 가도, 가볍게 형님네에 1박을 놀러 가도, 나는 설거지 한 번을 해 본 적이 없다. 시골 출신이라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해서 손이 야무지다고 아무리 어필을 해도, 나는 '손님'이라는 이유로 잔일을 전혀 시키지 않는다. 나와 아주버님은 자신들의 집에 와준 귀중한 손님들이기 때문에, 그저 대접만 받고 가면 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결혼은 집안끼리의 만남이라는 말을 귀에 박히도록 듣는다. 귀에 박히도록 듣게 되는 이유는, 이 부분이 꽤나 중요한 고민을 담고 있으며, 진중한 선택지 중에 하나가 되기 때문이겠다. 어머님은 본인의 시집살이가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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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남의 일기 서른하나 2023. 11. 11. 20:37
성수가 말했다. 어제 지하철로 퇴근을 하는데, 아줌마가 엄청 큰 소리로 전화를 받아 불편했다고. 그리고 다시 성수는 나에게 물었다. 왜 아줌마 아저씨들은 그렇게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는 거냐고. 내가 처음에 떠오른 생각은, 귀가 안 좋으셔서? 였지만, 그건 정답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좀 더 생각해 봤다. "혹시 머릿속이 복잡해서 아닐까? 다른 생각들이 모두 혼합되어 있는데, 통화할 땐 그 스위치를 끄고 상대방 목소리에 집중해야 하니까 일부러 더 크게 목소리를 하는 거야. 집중하려고." 성수는 맞을 수도 있겠다며 공감해 주었다. 이건 나의 엄마를 떠올리며 생각한 답안지였다. 엄마는 매번 여러 가지 스케줄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 와중에 전화가 오면, 꼭 한 번에 알아듣질 못하고 되묻거나, 목소리를 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