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댁에 가면 물 한 방울 손에 묻히지 않는다. 내가 눈치 없이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주방에 얼씬도 못하도록 어머님과 형님이 철벽 방어를 하기 때문이다. 명절에 시댁을 가도, 가볍게 형님네에 1박을 놀러 가도, 나는 설거지 한 번을 해 본 적이 없다. 시골 출신이라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해서 손이 야무지다고 아무리 어필을 해도, 나는 '손님'이라는 이유로 잔일을 전혀 시키지 않는다. 나와 아주버님은 자신들의 집에 와준 귀중한 손님들이기 때문에, 그저 대접만 받고 가면 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결혼은 집안끼리의 만남이라는 말을 귀에 박히도록 듣는다. 귀에 박히도록 듣게 되는 이유는, 이 부분이 꽤나 중요한 고민을 담고 있으며, 진중한 선택지 중에 하나가 되기 때문이겠다. 어머님은 본인의 시집살이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나에게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 하시고, 형님은 본인이 받고 싶은 대우를 나에게 그대로 비추어 행동해 주시는 것 같다. 두 분의 완벽한 공통점은, '집안끼리의 만남'이 부정적으로 쓰이지 않도록 그 악행을 완벽히 끊으려고 노력하신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반추해 나에게 그대로 위해주시는 것, 나는 어머님과 형님이 그냥 좋기도 하지만 어떨 땐 존경스럽기도 하다.
내가 유일하게 타고 태어난 것은 인복이다. 이런 시댁이 있을까 싶을 만큼 축복 같은 사람들을 만났고, 다행히 성수도 우리 가족들을 아주 많이 좋아해 준다. 며느리와 사위가 조금 독특한데도, 그들은 온전히 우리를 이해해 준다. 우리를 귀중한 손님으로 대해주시는 만큼, 우리도 서로의 가족을 귀한 손님으로 모시려고 한다.
어머님과 형님이 나에게 가르쳐 준 지혜는 어디에나 통용될 것 같다. 아무리 허물없는 친구여도 귀한 손님처럼, 정말로 밉상인 회사 동료일지라도 귀한 손님처럼, 마감 시간에 들어오는 얄미운 고객에게도 귀한 손님처럼, 나랑 종교가 다르거나 정치적 성향이 반대더라도 귀한 손님처럼. 어쩌면 편을 가르지 않고 배려하며 소통하는 방법은 '귀한 손님처럼'이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소중한 선을 하나 그어 놓고, 그 선을 밟지 않은 채 퐁당퐁당 뛰어다니는 것, 이것만이 서로의 세계를 조심스레 탐험하며, 가끔은 하나가 될 수도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