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기 스물여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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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뎅 물에 불린 손 (20.10.26)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5. 2. 10:48
학교 다닐 때 내 별명은 아무 이유 없는 유리창과 외계인, 도라이 등등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웃긴 건 '오뎅 물에 불린 손'이었다. 이유야 뭐, 손이 통통해서였다. 이건 백 퍼센트 유전이었는데, 엄마 손이 참 통통했다. 이유야 어쨌든 난 통통이 손 덕분에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배우게 됐다. 피아노를 시킨 엄마의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 머리가 똑똑해진다는 비과학적인 이유와, 손이 얇아졌으면 하는 부질없는 바램 어렸을 적엔 삼촌이 옆방에 살았는데, 아빠와 삼촌이 기타를 심하게 잘 쳤다. 단칸방에 빼곡히 꽂혀 있던 연주 CD들이 괜히 마음을 설레게 했었다. 자연스레 악기에 관심을 갖게 된 나는 피아노, 장구, 기타, 팬플룻 등을 배우고 몇 개 배우다 보니 하모니카, 플루트, 대금 등은 독학으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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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20.10.23)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5. 2. 10:28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우리집에 TV는 없었다. 대신에 폰을 주구장창 봤겠지만.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이 아날로그 라디오만 덩그러니 있는 것을 보고는 "밥 먹을 때 벽 보고 있어야 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물론 밥을 먹을 땐 허전하다. 그래서 나도 뭔갈 보는데, 그게 요즘은 넷플릭스이다. 뭔가 콘텐츠는 많은데 막상 볼 거는 없었다. 고르다가 밥을 다 먹고는 했다. 그래도 내가 김성수와 넷플릭스를 결제한 이유는 때문이었다. 내 머리론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 자막을 보기 위해... 어제 을 봤다. 나는 인간관계에선 눈물이 1도 없는 편인데, 영화를 볼 땐 감정 이입을 잘하는 편이다. 눈물도 바로 한바가지 쏟아낼 수 있다. 나의 문어 선생님의 주인공은 감독과 문어이다. 자막마다 생각을 단순하게 할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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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 인사 (20.10.18)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5. 2. 00:56
연차 사유로 '양가 인사'를 써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인쇄소와 출판사가 가장 바쁜 시기, 휴가 불허로 머리를 굴린 뻥이었다. "잘하고 왔니?"라는 사장님의 물음에 미리 멘트를 준비하지 못한 걸 후회했다. 아주 중요한 일에 연차를 허락해 준 뿌듯함이 사장님의 눈에 가득했다. 7년 동안 서로의 부모님을 뵌 적은 없다. 궁금은 하셨을 텐데, 워낙 우리 둘의 성격을 잘 헤아려 주셨다. 서른이 다가오는 지금 가장 달라진 점은 주변의 결혼들이다. 나는 나이 먹는 것을 그다지 싫어하진 않는다. 그래도 1년 전보단 매년 지금이 더 나은 것 같기 때문이다. 여유가 좀 생긴 것이든, 눈곱만큼의 철이 더 든 것이든 어쩌면 경험이 쌓이니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과거가 더 좋았다는 말을 나는 해본 적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