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기 스물여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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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르기 (20.07.25)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5. 1. 23:05
누구에게나 취약점이 있겠지만 나에겐 그게 알러지다. 새우는 고위험에 게는 측정범위 초과로 수치조차 알 수 없지만, 그 외에도 진드기와 먼지 등등 나를 낳아 준 엄마 말마따나 다시 태어나는 게 낫겠다 싶을 때도 있다. 배 속에 넣어주기만 한다면 싹 다 고쳐셔 다시 등장하고 싶을 정도다. 새우깡과 알새우칩에 진짜 새우가 들었을까? 궁금하면 나에게 먹여 보면 안다. 성분이 미세하게 들었고 나머진 향만 내는 구라라 해도, 나는 그 성분을 드러낼 수가 있다. 새우깡 하나에 볼에 반점이 부어올라 두 달을 창피한 적이 있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국물을 우려낼 때 쓰는 건새우나 게다. 김치수제비에 건새우가 몇 알 숨어 있었든, 길거리 오뎅을 먹는데 사실은 게로 우려낸 것이었든 결론적으론 온몸이 붓고 눈을 뜰 수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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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 (20.07.14)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5. 1. 22:36
나는 집이 가장 불편했다. 시골에서는 동네 사람 누구든 이 집 저 집 마루에 그냥 놀러 갈 수가 있다. 우리 집엔 마루가 있었고, 뭐든 만들어대는 아빠 덕에 공구를 빌리기 위해서도 사람들이 찾아왔다. 나에게 집은 언제든지 누구라도 불쑥 찾아올 수 있는 곳 마음 한구석에 발소리가 들릴까 매일 마음 졸이며 있는 곳 아빠를 부르든 엄마를 부르든 "유리야" 하면, 헐레벌떡 나가서 "지금 안 계신데요"라고 말해야 하는 곳이었다. 거의 매일 우리집엔 누군가가 찾아왔다. 어렸을 때부터 동네 친구보단 할아버지 할머니가 더 많았으니 쪽수(?)에 밀려 자동 어른 공경을 배운 것인지도 몰랐다. 인사예절도 제대로 받았고, 난 나름대로 예의가 발랐다. 언제나 뛰쳐나가 엄마아빠가 현재 부재중임을 즉각 전달했다. 옷도 항상 갖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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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20.07.03)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5. 1. 22:14
현대 사회는 뭐니 뭐니 해도 소비 사회다. 이때 소비의 대상은 물건이 아닌 구분짓기 욕망이다. 만약 내가 구찌가방을 샀다면, 이것은 담는 용도보단 이걸 산 내 능력 과시의 기회를 산 것에 더 가깝다. 브랜드 가치에 대한 선입견이 전혀 없었다면 나의 취향 상 저렇게 화려한 벌무늬가 정말 예뻐보였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물론 예뻐보일 수도 있지만, 그리고 브랜드의 역사에 매혹되었다고 말하고도 싶을 테지만 아마 내 눈에 예뻐보인다기보다는, 이 가방을 바라 볼 타인의 시선을 더 사고 싶었을 것이다. 단순히 기능을 다했다고 물건을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주 약간씩 업그레이드가 되더라도 보편적인 유행에 뒤쳐지고 싶지 않다는 욕망 소외되고 싶지 않고, 능력이 없어보이고 싶지 않다는 욕망 그리고 뭔가 돈이 많아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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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07.02)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5. 1. 18:14
요즘 사진 한 장이 나인 경우는 거의 없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 안의 일상 또한. 보이고 싶은 가장 최선의 행복을 힘겹게 찍었는데, 그게 진짜 나와 일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좋게 말하면 예쁜 사진이지만 일체감 없고 지속이란 없는 이 씁쓸함 속에 사진이 주는 간극을 어떻게 매워야 할까. 미의 기준이 보정, 필터, 가짜 미소가 된 요즘 자꾸 나를 누군가의 사진과 비교하게 된다. 사실 가짜로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현실이 따라가기란 아예 불가능하다. 이 가공된 아름다움 속에 계속 빠져있고 싶을 때 따라오는 것은 항상 현실의 헛헛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