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기 스물여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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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 (20.11.18)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5. 5. 10:00
간혹 아주 간혹 일에 집중하다 김성수에게 오늘은 야근을 하고 가겠다고 문자를 할 때가 있다. 꼭 이럴 때 사장님은 퇴근 무렵에 조용히 들어온다. 그럼 나는 조용히 책가방을 싸서 퇴근을 한다. 일도 일이지만, 한번 시작된 싸움은 이겨야 하는 것이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사장실에 앉는 순간,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나가는 직원을 바라보는 사장의 표정을 본 적이 있는가. 난 아주 자주 보는데 대체로 셋 중 하나이다. 1. '쟤는 뭔가'하는 표정으로 인사도 안 받아주고 계속 쳐다보신다(무서운 눈빛으로). 나는 최대한 90도로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 땐 바로 문 쪽으로 고개와 발걸음을 옮긴다. 2. 그냥 안 쳐다보신다. 3. "그래. 수고했어"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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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네이도 (20.11.17)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5. 4. 14:53
내가 담당하는 책 중 미국에 거주하시는 저자는 오늘 토네이도가 닥쳐 전기가 차단되었다. 출판사의 연말, 하루하루가 불타오르게 바쁜 시기 원고를 왜 이렇게 늦게 주냐 차장님은 독촉하시지만 "토네이도가 닥쳐......." 라고 이야기해 봤자 미리 안 받은 게 잘못이라 결론날 게 뻔해 입도 뻥끗 안 했다. 마음 아프게도 일본은 지진과, 미국은 토네이도와 친구라던데, 내 친구는 반토막 난 원고이다. 독촉을 하도 하다 보면 저자들도 미안해서 일부라도 먼저 보내 줄 때가 있다. 그 일부가 참 받은 것 같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받아 진행 중이라고 말로 모면할 수 있는 원고. 내 회사 생활은 마치 다람쥐 같다. 산사태 날 줄 모르고 코앞의 도토리 몇 개 줍고 있는. 오늘도 출간일을 미루면서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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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20.11.16)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5. 4. 13:46
소라는 꽃을 좋아한다. 그래서 가을 국화를 여러 색으로 골랐다. 성수가 등 뒤에 숨겨서 데리러 나온 소라 앞에 짠 하고 내밀었다. 순간 "형, 아침에 부탁한 거 준비해 오셨네요."하고 정식이가 너스레를 떠니, 성수가 "그럼!"하고 받아주었다. 꽤 친해졌구나 싶었다. 서로 번호도 모르면서... 탁 트인 야외 카페에서 커피와 맥주를 마셨다. 소라는 휴대폰을 보며 주문한 고기가 아직 도착을 안 했다며 걱정을 했다. 소라는 자기 집에 우릴 초대하면서 정말 많은 준비를 했다. 내가 먼지 알러지가 있어 침구와 옷가지도 전부 빨아 놓았다. 지도 눈썹 휘날리게 바쁜 직장인이면서. 누군가에게 음식을 해 준다는 게 얼마만큼의 애정과 마음이 담긴 것인지, 셀 수 없는 종류의 것이란 걸 안다. 음식을 구상하면서 재료들을 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