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기 스물여덟
-
공갈직원 (20.08.27)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5. 2. 00:39
요샌 혼자 출근한다. 김성수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성수네 팀엔 새로운 알바 한 분이 들어오셨는데, 나름 중요한 프로젝트라 팀장님과 함께 면접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구글, 네이버처럼 검색창을 만들 예정인데 그렇게 하려면 AI가 자동으로 분류할 수 있도록 일단 수작업으로 최대한 정확한 자료를 일일이 입력해야 한다. 하루에 700개, 많게는 1000개 정도의 정보를 입력하는 것이다. 빠른 성과를 위해 알바 한 분을 더 뽑아야 하나 회사에서 고민하던 중 성수는 자동분류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었다. 맨날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작동원리를 공부하곤 했던 공갈직원의 쾌거였다. 김성수랑 나는 항상 회사가 우리 삶의 가장 작은 영역이라고 대화 나누곤 했었다. 꼬마개발자가 나름 구르는 재주를 발휘했다. 일주일 혼자 출근하..
-
저자와의 싸움 (20.08.26)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5. 2. 00:22
몇 달 시리즈 출간에 치이고 있다. 최근엔 저자와 미묘한 다툼을 했다. 요는, 어렵게 쓰지 말고 쉽게 써 달라는 것 문장을 추상적으로 만들지 말고 일상적인 단어로 써 달라는 것 문장이 너무 모호해 아무 데나 한 군데 골라 설명해 달라고 하고 싶었다. 나는 확신했다. 자기 말로 쓸 수 없어서 이것저것 따다 쓴 문장이라고 저작권을 피하려다 보니 훔친 문장이 점점 길어지고 난해해졌다. 주술 관계가 전혀 맞지 않았다. 의미를 빌리려고 본인의 땅에서 잠시 돌다리를 건넜다가 간극이 너무 커서 되돌아오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냥 잠수를 해 버렸는데 문제는, 입수 전 잠시 방문했던 땅의 의미를 불확실한 상태로 나에게 던져 놓았다. 본인도 책임지지 못할 의미를(이해나 했으면 다행이다.) 나에게 책임져 보라고 하는 꼴이었다..
-
-
태풍주의보 속 백패킹 (20.08.05)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5. 1. 23:21
배 안은 평화로웠다. 우린 덕적도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맥주 한 캔을 사고, 오징어 굽는 냄새가 미쳤다는 생각에 마른오징어도 한 마리 샀다. 맥주부터 클립을 뒤로 젖히고, 안주를 성수에게 건넸다. 곰곰이 오징어를 들고 있던 성수는 매점으로 향했다. 손에 들고 온 것은 과자 박스를 찢은 한 단면이었다. 바닥에 뭘 흘리기 싫어하는 성격이다. 나는 맥주 한 모금을 먼저 털어 넣었고, 내 무릎을 베고 누워 성수는 구운 오징어를 짝짝 찢기 시작했다. 누런 박스 위에 쌓여가는 안주를 하나 집어들었는데, 오징어가 마치 실같이 얇았다. "왜 이렇게 얇게 찢어? 혹시 심심해?" "아니, 딱딱한 거 이빨에 안 좋아." "아... 오빠도 먹어. 도착하려면 좀 멀었어." "나는 건강한 이빨로 오래 살고 싶어. 너 많이 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