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기 스물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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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 (21.01.16)남의 일기 스물아홉 2021. 5. 14. 00:29
우리집과 외갓집은 걸어서 15분 거리였는데, 외할머니는 혼자 살았다. 친할머니한테는 아빠, 엄마, 동생, 나까지 있으니까 왠지 쪽수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외할머니랑 같이 살까?"하고 물었더니 학교는 가는 길에 태워서 가도 되니까 그렇게 하라고 엄마가 말했다. 내가 느끼기로는 외할머니는 나랑 살면서 밥 먹는 것을 가장 좋아했던 것 같다. 물론, 손주에게 줄 반찬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해서 귀찮았을 수도 있다. 혼자 살게 되면 물에 밥 말아먹는 게 가장 간편한 일상이란 사실을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들을 보고 알았다. 어느 날 할머니랑 둘이서 자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놀자고 문자가 왔다. 이미 밤늦은 시각이었지만 조용히 윗방 창을 넘어 집을 나갔다. 그렇게 새벽 내내 놀다가 친구의 오도바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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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의 생일 (21.01.14)남의 일기 스물아홉 2021. 5. 14. 00:16
어제는 성수의 가짜 생일이었다. 의외로 꽤 많은 선물들을 받아 왔다. 친구가 2명인 줄 알았는데 뜻밖의 쾌거였다. 김성수의 진짜 생일은 9월 18일이다. 벌써 4년째 까먹고 있어 잊을 수가 없다. 내 실수를 십팔로 욕할 수 있는 숫자라 더 외우기 쉬웠다. 매해, 나는 김성수의 생일을 저녁 때야 알게 되었다. 그가 먼저 "저녁 같이 먹을까?"라고 묻는 순간에. 남동생과 가까운 친구들은 '니가 인간이냐'라는 식으로 쳐다볼 때도 있지만 김성수는 정말로 괜찮았다. 이렇게 써도 '니 생각만 그렇지. 너라면 안 서운하겠냐?'라고 생각할 테고, 나 또한 여러 번 진짜 서운하지 않냐고 의심을 품었지만 김성수의 대답은 항상 똑같았다. "응.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데. 그냥 너랑 먹는 저녁으로 생일은 충분해." 여러 번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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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함 (21.01.12)남의 일기 스물아홉 2021. 5. 14. 00:01
회사 언니 둘과 도시락을 먹다가 별자리 운세를 봤다. 물병자리가 맨 앞이라 내 운세부터 시작하는데, '새로운 일을 하려면 지금 시작하라'에서 다른 언니(동업자)와 몰래 눈짓 미소를 주고받다가, 연애결혼 운에서는 내가 노발대발 화를 냈다. "가장 좋기는요! 연애 8년 만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헤어질 뻔 했어요." 언니 둘이 한참 웃어대기 시작했다. 동거 전, 김성수와 나는 각자도생이었다. 어차피 자기 인생의 선택은 본인이 해야 한다는 주의였다. 함께 그리는 인생을 토론한 적은 거의 없었다. 동거 후, 돈이 섞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돈은 관리비며 아이맥 할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먹고, 마시고, 보고, 경험하고, 웃고 떠드는 모든 일상에서의 행복이 결국 돈인데, 한 사람이라도 책임감에서 후퇴하면 지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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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21.01.06)남의 일기 스물아홉 2021. 5. 13. 23:36
안 믿기겠지만 내 꿈은 공부다. ㅍ. 꿈인 듯하다고 느낀 건 26살 즈음. 새로운 자극이 복합 요소가 되어 다각적인 시선을 만들어 주는 게 좋았다. 물론 그러려면 일단 드럽게 읽기 싫어도 읽어야 했다. 어쨌든 졸업하고 곧바로 꿈을 따라갔다. 노동은 세 시 전에 끝내고 책을 읽었다. 돈이 조금이라도 모이면 혼자서 해외를 갔다. 그렇게 3~4년 행복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선 하루 다섯 시간만 일하고는 살 수가 없었다. 해외여행을 한 번이라도 다녀오면 주머니가 빈털터리였다. 그래서 취업을 결정했다. 무엇보다도 여가의 범위를 늘리고 싶었다. 웬일인지 돈이 없으면 경험도 할 수 없는 세상이었다. 이왕이면 자극이 마구잡이 텍스트로 들어오는 출판업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취업에 성공했고 생각보다 일이 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