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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 (21.01.16)남의 일기 스물아홉 2021. 5. 14. 00:29
우리집과 외갓집은 걸어서 15분 거리였는데, 외할머니는 혼자 살았다.
친할머니한테는 아빠, 엄마, 동생, 나까지 있으니까 왠지 쪽수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외할머니랑 같이 살까?"하고 물었더니
학교는 가는 길에 태워서 가도 되니까 그렇게 하라고 엄마가 말했다.
내가 느끼기로는 외할머니는 나랑 살면서 밥 먹는 것을 가장 좋아했던 것 같다.
물론, 손주에게 줄 반찬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해서 귀찮았을 수도 있다.
혼자 살게 되면 물에 밥 말아먹는 게 가장 간편한 일상이란 사실을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들을 보고 알았다.
어느 날 할머니랑 둘이서 자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놀자고 문자가 왔다.
이미 밤늦은 시각이었지만 조용히 윗방 창을 넘어 집을 나갔다.
그렇게 새벽 내내 놀다가 친구의 오도바이를 타고 귀가한 날이 종종 있었다.
그때 나는 분명 할머니가 아주 깊이 잠들었다고 생각했다.
첫 의도는 할머니가 외로울까봐서였지만
나도 모르게 자유의 맛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나이 탓인지 할머니의 음식이 굉장히 짜지곤 했는데,
어떨 땐 계란찜에 맛소금 한 봉지를 통째로 넣은 것은 아닐까 궁금한 날도 있었다.
그래서 밥을 우걱우걱 먹으면, "잘 먹네. 밥 더 줄까?" 하실 때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정말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렇게 고3까지 할머니와 둘이서 지냈다.
그런데 훗날 막내 이모한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너 할머니랑 살 때 새벽에 나가서 몰래 놀고 왔지? 쌀자루 밟고, 창문 넘어서"
나는 크게 당황하였지만, 그보단 많이 놀랐을 할머니가 더 걱정이었다.
"할머니가 너 나가면 온 가족한테 전화를 걸었어. 그 새벽에. 유리 놀러 나갔다고"
그 와중에도 이모들한테만 전화를 돌리고 우리 엄마한테는 비밀로 하라는 할머니의 배려가
나는 아직도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