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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함 (21.01.12)남의 일기 스물아홉 2021. 5. 14. 00:01
회사 언니 둘과 도시락을 먹다가 별자리 운세를 봤다.
물병자리가 맨 앞이라 내 운세부터 시작하는데,
'새로운 일을 하려면 지금 시작하라'에서 다른 언니(동업자)와 몰래 눈짓 미소를 주고받다가,
연애결혼 운에서는 내가 노발대발 화를 냈다.
"가장 좋기는요! 연애 8년 만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헤어질 뻔 했어요."
언니 둘이 한참 웃어대기 시작했다.
동거 전, 김성수와 나는 각자도생이었다.
어차피 자기 인생의 선택은 본인이 해야 한다는 주의였다. 함께 그리는 인생을 토론한 적은 거의 없었다.
동거 후, 돈이 섞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돈은 관리비며 아이맥 할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먹고, 마시고, 보고, 경험하고, 웃고 떠드는 모든 일상에서의 행복이 결국 돈인데,
한 사람이라도 책임감에서 후퇴하면 지금의 행복에서 멀어진다는 말과 다름 아니었다.
김성수가 회사를 관두고 국가 지원을 받으며 공부를 하고 싶어 했다.
그 지원금이란 월급의 3분의 1이었다.
나는 대화를 치사하게 하기 시작했다.
오빠의 지금 환경이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어 약간 회피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김성수는 그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나는 지금까지와 전혀, 정말 전혀 상반되는 대답을 처음으로 해 봤다.
"선택은 오빠가 해. 그 선택이 오빠의 현주소일 것 같아. 그런데 내가 2년을 버틸지는 모르겠어. 나에게 지금의 행복을 2년 미루라는 말과 다름 아니잖아. 사실 내가 지금 그러기가 싫은 것 같아."
다음 날 다시 이야기를 했을 때, 김성수는 회사를 관두는 대신 200만 원이 넘는 코딩 학습을 결제했다.
헤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과, 좀 더 강한 결정을 해 보라는 내 치사한 질문에 내린 결론이었다.
내가 돈을 따르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연애 8년 만에
처음으로 자기의 선택지를 상대방에게 묻는 순간이었다.
내 선택지를 니 인생에 함께 넣어도 되겠냐는 아주 낯선 질문,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나의 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