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만 요리를 못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도 치킨을 자주 시켜주곤 했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다.
어른이 되고 새우 알러지가 심해진 나는 김치 젓갈조차 탈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김장철엔 엄마에게 새우젓을 뺀 김치를 따로 부탁하곤 한다.
그렇게 작년에 시골에서 대량의 김치가 올라왔다.
"요즘 배춧값도 비싼데, 너무 감사하다!" 김성수가 말했다.
갓 버무린 김장 김치의 맛은 얼마나 기가 막히던가!
수육을 삶아야 하나, 흰쌀밥을 지어야 하나 며칠 전부터 행복한 고민을 했더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엄마의 김장 김치는 맛이 없었다.
맛이 없다는 게 아니고 맛 자체가 없는, 그러니까 신기하게도 無(없을 무) 맛이었다.
"유리야... 신기해. 아무런 맛이 안 나!!"
나는 무슨 소린가 했다.
"뭐야... 코로나야...? 무섭게 왜 그래애!"
"아니, 그게 아니고 맛이 신기하다니까! 무. 없을 무. 그냥 맛이 아예 사라진 그런 김치야!"
성수는 김치에 양념장이 이렇게나 많이 들어갔는데 어떻게 아무런 맛이 나지 않는지. 그게 정말로 신기하다고 했다.
고춧가루, 배, 부추, 다진 마늘, 풀, 파... 김장을 해 본 적 없는 나도 단숨에 이것저것이 떠오르는데...
그때는 마냥 걱정만 앞섰다. 백 퍼센트 코로나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혹시 나도 그새 옮았나 싶어 얼른 김치를 집어 먹었다.
그런데 세상에... '無' 맛이었다.
정말로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았다!!
성수와 나는 9년 차 연애 중이지만 서로의 부모님을 만난 적도, 연락을 드린 적도 없다.
한 번 시작하면 계속해야 한다는 이유로 시작을 안 한 것이다.
그러니까 연말에 선물을 챙기기 시작하면 그다음 연말에도, 그다음 연말에도 챙겨드려야 하니 최대한 그 일을(?) 늦추자는 게 불효자 1, 2의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김치가 줄질 않으니 사실대로 말을 하긴 해야 했다.
"엄마... 잘 들어. 김치에서 아무 맛이 안 나. 맛이 없다는 게 아니야. 맛 자체가 하나도 안 느껴지는 無 맛이라는 거야!!"
그리고 덧붙였다.
"오빠가 너무너무 신기하대. 이렇게나 빨간데, 신기하게 매운맛조차도 안 난대. 분명 초록 빛깔 노란 빛깔이 보이는데 그 색들이 맛을 내고 있지 않대."
성수가 미래의 어머님(?)이 될 수도 있는 우리 엄마에게 간접적으로 전한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엄마는 계속 깔깔깔깔 웃기만 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나와 동생, 엄마의 형제자매들, 할머니와 외할머니로부터 손맛 없다는 소리를 익히 들었던 터였다.
그래서 비건 김치를 사서 시켜 먹었는데, 엄마는 병욱이한테도(남동생) 같은 걸로 시켜 주라고 했다.
하지만 이것도 꽤 돈이라 올겨울 다시 한번 젓갈 없는 김장 김치를 부탁했다.
조건은 있었다.
꼭 외할머니의 손을 빌려 함께 만들거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아주 적은 양을 보내 달라는 것.
덧붙여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하니 엄마가 갖고 싶은 것을 하나 말하라고 했다.
냉장고에 가득 쌓인 김치만큼이나 하나 가득 엄마는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