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기 서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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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쉼남의 일기 서른 2022. 5. 17. 21:41
백수 주제에 '쉼'질도 제대로 못하는 건 무슨 엿같은 경우겠냐고, 조수석에 앉아 내가 물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여수 도로는 확실히 친구의 운전 솜씨를 터프하게 만들어 놨다. 소라는 큰 소리로 웃었다. 내 말에 매우 공감하고, 또 매우 찔린다는 뜻이었다. 나 역시 결이 같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백수는 쉬는 사람인데,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쉬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게 억울해서 한 소리였다. 여수는 어딜 가도 바다가 보이고, 짠내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서른과 서른 한 살의 두 백수는 6일 내내 붙어 다녔다. 가끔은 퇴근 시간에 맞춰 정식이 픽업을 갔다. 시장에서 미리 떠 놓은 갑오징어 때문에 빨리 퇴근하라고 독촉을 해댔다. 정식이는 소라의 남편이다. 남편이 공무원이라는 직업적 특성 때문에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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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집이란 무엇인가남의 일기 서른 2022. 5. 12. 03:31
대체로 결혼을 하기 위해 집을 구하고 그게 신혼집이 되지만, 우린 집을 들어가기 위해 결혼을 하고 그게 신혼집이 됐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오랜만에 잠이 오지 않아 키보드를 뚝딱거리고 있지만 김성수는 기어코 서른까지 이어지던 나의 질긴 수면 습관을 치료했다. 잠들기까지 한 시간은 걸리고, 또 한밤중 세네 번은 기본으로 깨야 하는데, 어느샌가 머리만 닿으면 바로 숙면에 드는 김성수의 능력이 나에게로 옮겨왔다. 그대로 아침까지 깨지 않는다. 지금도 남편이 된 사람 옆에 누워 평소와 같이 손을 잡으면 된다. 그러면 김성수는 곧바로 몸을 돌려 뜨뜻한 살로 나를 데운다. 그럼 마찬가지로 둘인 아침이 찾아온다. 지금껏 이래왔던 공간이 신혼집이면 어떠하고. 작은방이면 어떠하겠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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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남의 일기 서른 2022. 4. 18. 17:34
박쥐는 초음파로 감각한다. 청각을 시각화해서 어둠 속에서도 환경을 인지할 수 있다. 뱀은 냄새와 열로 감각한다. 뱀은 사람이 볼 수 없는 적외선까지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똑같은 장소를 바라보더라도 박쥐가 보는 세계와 뱀이 보는 세계가 다를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인간이 눈으로 보는 세계와도 그 그림이 다를 것이다. 어떤 생명체의 감각 체계가 옳은 기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추상적인 사고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생각하는 능력으로 인간은 자연을 탐구하고 정복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을 좀 더 쉽게 다루기 위해 자연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그 분류 체계에서 종의 위아래를 구분 지었다. 그리고 퇴보하는 종은 사라져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 잣대는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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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요즘남의 일기 서른 2022. 4. 15. 15:19
난 요즘 개다. 강아지라고 해 주면 좋으련만, 김성수는 굳이 '개'라고 표현했다. 내가 개가 된 이유는 산책 때문이다. 매일 산책을 시켜줘야 하는 개처럼, 나는 하루 세 번 꼭 산책을 갔다. 'I 서울 YOU'의 서울시 슬로건을 따, 나는 우리 동네에도 내 나름대로 슬로건을 붙여 줬다. 'I 문래 YOU' 오빠와 나의 문래 사랑이 한껏 들어가 있다. 사랑스러운 동네를 산책하는 게 나의 소소한 취미다. 성수도 걷는 걸 좋아하지만, 그보단 침대에 누워 롤 경기를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는 혼자서 산책하기도 하지만, 그보단 한순간도 오빠랑 떨어지기가 싫다(?). 산책 타령으로 매번 시끄러운 나에게, "우리 유리, 나갈 때가 되었네"라고 말했고 그렇게 길을 나서면 잡은 손을 길게 늘어뜨려 나를 앞장서 가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