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는 초음파로 감각한다. 청각을 시각화해서 어둠 속에서도 환경을 인지할 수 있다. 뱀은 냄새와 열로 감각한다. 뱀은 사람이 볼 수 없는 적외선까지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똑같은 장소를 바라보더라도 박쥐가 보는 세계와 뱀이 보는 세계가 다를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인간이 눈으로 보는 세계와도 그 그림이 다를 것이다. 어떤 생명체의 감각 체계가 옳은 기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추상적인 사고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생각하는 능력으로 인간은 자연을 탐구하고 정복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을 좀 더 쉽게 다루기 위해 자연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그 분류 체계에서 종의 위아래를 구분 지었다. 그리고 퇴보하는 종은 사라져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 잣대는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적용되었고, ‘부적합’한 자들이 번식을 이어가는 것을 반대했다.
‘부적합’이라는 기준은 분류 체계에서부터 나온다. 선을 가르는 과정에서 그룹 혹은 편이 생기고, 포함되지 않는 변이들은 배제되기 쉽다. 다윈이 변이를 강조해 자연의 이치를 흘러가는 것으로 보았다면, 조던은 우월한 유전자를 기준으로 자연을 정지시켜 보려고 했다. 하지만 조던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계속해서 불편함이 느껴진다. 진실을 외면하는 과학자를 보는 기분이랄까.
조던의 ‘확신’은 다른 진실을 들여다볼 여유를 만들어 주지 못했다. 다윈은 ‘사다리는 없다’고 밝혔지만, 조던은 견고한 사다리를 세워 아래에 있는 것들을 정복하려 했다. 정복은 폭력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 신체적인 폭력을 낳았고, 그의 확고한 사상은 또 하나의 거대한 개념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론과 사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방법 자체를 아예 몰랐던 것이다.
평생 물고기를 분류하는 데, 그리고 그 분류 속에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 있다고 믿는 데에 온 힘을 쏟았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 그리고 그 믿음으로부터 하나의 우생학적 관점이 탄생하고, ‘부적합’한 인간들이 무방비하게 폭력에 노출되었다. 죽을 때까지 어류라는 분류 체계를 통해서만 세상을 봤던 조던에게 룰루 밀러는 시원하게 뒤통수를 한 대 날린다. 분류학적으로 물고기라는 것은 맞지 않다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조던의 평생 과업을 완전히 전복시켜버린다.
박쥐는 박쥐만의 세계가 있고, 뱀은 뱀만의 세계가 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경험할 수도, 기웃거릴 수도 없는 세계다. 그러니 인간이 바라보는 세계로만 기준을 삼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자연은 오히려 끝없는 세계를 낳고 있다. 기준을 긋지 않고 다양성을 인정하면 무엇이든 포함하고 안으려고 할 것이고, 분류하고 통제하려 한다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은 억누르려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여러 폭력을 낳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