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기 서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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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와 엄마남의 일기 서른 2022. 6. 6. 02:07
운전하던 소라가 말했다. "그럼 너네 아버지랑 성수오빠가 길을 지나가면, 서로 사위인지 장인어른인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가는 거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서로 알지를 못하니까. 나는 이 말에 별 감흥도 없었다. 그런데 뒤에 앉아 있던 소라 여동생과 남편 정식이가 웃기 시작했다. 얼굴도 모르는 장인어른과 사위라니. 하지만 저번 달부터 나의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되신 분들도 마찬가지로 내 얼굴을 모르는 걸. 이게 보통의 생각으로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란 걸 처음으로 자각했다. 그리고 지난주, 우리집에 엄마가 왔다. 남동생과 KTX를 타고. 처남이 된 병욱이는 내 남편을 잘 안다. 전주에서 동생과 자취를 할 때, 병욱이가 해야 할 일은 짐을 싸서 여자친구의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하루는 동생 가방에서 양말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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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남의 일기 서른 2022. 5. 23. 16:55
성수는 스타벅스를 좋아하고, 난 싫어한다. 성수는 스타벅스 인테리어가 쾌적하다고 좋아하고, 난 커피가 맛없으며 심지어 커피를 제외한 모든 음료가 죄다 달기 때문에 싫어한다. 남편은 에스프레소를 훌렁 마셔버리거나, 아메리카노를 시키더라도 두세 모금만 마시기 때문에 상관없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메뉴판 앞에서 거의 고사를 지낸다. 그럼 스타벅스 말고 다른 델 가지 그러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대안은 또 없다. 우리 동네엔 커피 맛집이 하나도 없으며, 실제로 공부하기에 가장 쾌적한 곳은 스타벅스인 것도 같다. 허브차를 시키자니 집에서 마시는 티백들이 떠올라 아까워 죽겠다. 그래서 선택한 다른 음료들은 어쩜 하나같이 백종원 선생님 지휘 아래 만든 것만 같은지. 외국인 입맛으로 디폴트 설정이라도 되어있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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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천남의 일기 서른 2022. 5. 19. 21:34
여수. 바다가 배경인 곳을 실컷 걸었다. 끝없는 바다를 눈으로 담아 꽤 넉넉한 마음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뜬금없이 안양천이 떠올랐다. 떠올랐다기보단 약간의 그리움이 솟았달까. 안양천은 내가 매일 밤마다 산책을 하는 곳이다. 천 건너엔 부자 동네 목동 아파트가 줄을 지어 서 있다. 퇴근을 마친 사람들이 자랑하듯 실내등을 켜 야경이 아주 볼만하다. 조경이 잘 조성되어 있는 것도 물론이지만, 한번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에너지가 사실 더 볼만한 곳이다. 쫄쫄이로 세트를 이룬 아저씨 자전거 군단, 밤잠 없는 밤을 꼭 잡은 손으로 달래러 나온 노부부, 뱃살을 빼자는 목적이었겠지만 앉아서 수다만 떠는 아줌마들, 탕- 탕- 탕- 시원한 농구공 소리와 함께 걸쭉한 욕도 같이 내뱉는 고딩들, 딱 봐도 저희 썸 타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