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기 서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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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따르기남의 일기 서른 2022. 7. 12. 20:48
혼인신고를 한 지 귀엽게도 3개월이 되었다. 우린 둘 다 머리도 못 감고 구청에 갔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겨울옷 탓에 남편과 나는 후리스를 걸쳤고, 둘 중 한 명은 세수도 못 했다. 그 한 명은, 물론 나다. 부랴부랴 정신없이 택시를 탔지만, 가는 내내 손을 꼭 잡고 많이 설레였다. 남편은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쓰는 데 애를 먹었다. 그래도 신고하기까지는 참 간단했다. 그보다는 부부가 될 또 한 커플이 바로 옆에서 서류를 작성하는 바람에 나는 얹어 놓은 모자를 더 꾹 눌러써야만 했다. 그 커플은 연분홍색으로 아주 정갈하게 커플룩을 입고 있었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이라면,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남편의 성을 따를 것인지 아내의 성을 따를 것인지 물어봤다는 것이다. 나는 '세상 참 좋아졌구나'하며 아주 살짝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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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결산남의 일기 서른 2022. 7. 1. 17:44
자, 상반기 결산을 해 보자. 올해는 내가 나에게 직업 체험의 해를 부여했다. 이게 가능하자면 월급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는데, 나에겐 이미 혼인신고로 코가 꿰인 김성수가 있다. 성수는 여전히 나에게 이것저것 해 보라고 여유를 주고 있지만(물론 기한은 있다), 모쪼록 법원을 구경하지 않으려면 나도 직업을 찾아야만 하겠다. 여담으로 '짜잔' 카드란 게 있다. 이게 뭔지 설명하자면. "오빠, 잭슨 피자가 땡기네. 야채피자랑 코울슬로도." "응. 그런데 무슨 돈으로?" 김성수의 카드를 활짝 들어 보이며 "짜잔~~!" "뼈가 빠지네..." 이게 짜잔 카드다... 정말로 상반기 결산을 해 봐야겠다. 퇴사 3회, 입사 3회. 아니다. 6월 30일 자로 퇴사를 한 번 더 하였으니 정산이 바뀌어야겠다. 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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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눌린 감정은 숨어 있다 약해질 때 불쑥 나타난다남의 일기 서른 2022. 6. 9. 01:27
엄마의 형제자매들과 나는 상생이 되는 듯하면서도 참 안 맞는다. 특히 큰이모와 셋째이모, 삼촌은 나를 봤다 하면 술을 마시자고 조른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나는 눈치와 싸가지가 탑재되어 있다고 하는데, 바꿔 말하면 철이 일찍 들었다는 것이니 이게 기쁜 일인지 안타까운 일인지는 모르겠다. 시대를 불문하고 가족이 북적이면 콩가루가 되는 듯하고, 콩가루 집안에서는 철이 빨리 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늦퇴한 어느 날 저녁, 셋째이모한테서 전화가 왔다. "유리야, 너 우리 OO(셋째이모 아들) 군대 가는 거 알아 몰라." "알아." "알아? 그런데 술자리 한 번 안 만들고 뭐 하는 거야? 니가 가족들한테 전화를 다 돌려야지." 막내이모를 제외하고 첫째부터 다섯째까지 모두 한 동네에 붙어 산다. 그런데 서울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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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돈남의 일기 서른 2022. 6. 7. 14:28
30대에 돌입하고 김성수와 내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돈'이다. 20대 땐 지나치게 돈을 몰랐다. 그렇다고 지금 돈을 알아서 돈이 있는 것도 아니다만. 오빠에게 물은 적이 있다. "돈이 뭘까?" 아주 잠깐 고민하던 성수는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글쎄... 부모 같은 존재 아닐까.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주는." 나는 너무 놀랐다. 맞는 말이라서. 20대의 내가 이 상황을 지켜봤다면. 그러니까. 돈이 그렇게 중요치 않았던 젊었을 적의 내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 본다면, 20대의 나는 과연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곧 백수 2개월 차가 되어간다. 여전히 일은 하기 싫고 성수는 독촉을 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30대가 되어버렸고, 서울은 이것저것 하고 살기에 집값도 밥값도 찻값도 모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