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형제자매들과 나는 상생이 되는 듯하면서도 참 안 맞는다. 특히 큰이모와 셋째이모, 삼촌은 나를 봤다 하면 술을 마시자고 조른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나는 눈치와 싸가지가 탑재되어 있다고 하는데, 바꿔 말하면 철이 일찍 들었다는 것이니 이게 기쁜 일인지 안타까운 일인지는 모르겠다. 시대를 불문하고 가족이 북적이면 콩가루가 되는 듯하고, 콩가루 집안에서는 철이 빨리 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늦퇴한 어느 날 저녁, 셋째이모한테서 전화가 왔다. "유리야, 너 우리 OO(셋째이모 아들) 군대 가는 거 알아 몰라." "알아." "알아? 그런데 술자리 한 번 안 만들고 뭐 하는 거야? 니가 가족들한테 전화를 다 돌려야지." 막내이모를 제외하고 첫째부터 다섯째까지 모두 한 동네에 붙어 산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나보고 전화를 돌리라니. 매번 이런 식이었다. 절대로 내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조금은 있겠지만, 그보단 다른 이유가 있다. 큰이모는 나에게 자기 아들딸 장가와 시집을 어떻게 갈지를 물어보고, 셋째는 자기 딸이 어디로 취업해야 하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삼촌은 자기 인생관과 철학관을 나에게 길게 길게 털어놓기를 좋아한다. 다 각자만의 골칫거리나 고민들이다. 그런데, 이날은 문제가 좀 있었다. 망할 놈의 야근으로 내가 너무 피곤했다는 것. 또 하나는 엄마가 생맥주 기계를 들여놨다는 것. 이날 개시한 맥주 한 통은 모두 이모들 뱃속으로 들어갔고, 그 알코올들은 이모의 말투를 전투적으로 바꿔 놓았다. 나에게 있다고 한 것 두 개. 눈치와 싸가지. 나는 그 두 가지를 밥 말아먹기 시작했다. "이모가 아들한테도 못 말하는 것을 왜 내가 말해야 돼? 이모 조카가 열 명이 넘어. 그런데 그중에 꼭 내가, 반드시 내가 그런 자리를 만들어야만 해? 내가 가족 모임 지긋지긋해서 멀리 떨어진 것도 같은데?" 사실이었다. 난 드라마에서 보는 콩가루 집안을 우리 집에서도 봤다. 나 스스로 콩가루가 다 묻혀진 인절미가 되기 전에 맨질맨질한 부분을 조금이라도 남겨 두고 싶었다. 그래서 멀리멀리 떠나왔다. 이모는 아들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거부하기 위해 애썼다. 그래서 문제 해결을 나에게 전가했다. 그런데 불편한 감정은 거부하려 할수록 오히려 더 커져 버리거나, 어딘가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그 사람이 약해질 때마다 다시 불쑥 나타난다. 억눌렸던 만큼 순간적으로 띠용- 활발히 튀어나온다. 그날 이모를 약하게 만든 것은 맥주와, 아마도 조금은 피곤한 하루였을 것이다. 엄마는 나를 혼을 냈다.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냐는 너무도 당연한 말을 했다. 이모의 공격적인 말투에 나도 짜증을 못 이겨 울었다. 이 울음도 마찬가지였다. 무의식에 꼭꼭 담아 두었던 불편한 감정이 터져버린 것이었다. 내가 약해진 틈을 타. 똑똑한 척하면 뭘 할까. 바보 같은 말은 내가 다 하는데. 눈치랑 싸가지가 있으면 뭘 할까. 가족 하나도 품을 수 없는 수준의 마음 그릇인데. 생각과 감정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찾아오고, 또 사라지는 것을 반복한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과 감정을 거부하거나 없애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것들을 억지로 컨트롤할 수는 없다. 컨트롤하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커져 버리거나 내 무의식 깊숙한 곳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이건 내가 약해질 때마다 다시 불쑥불쑥 나타나곤 한다. 그런데, 방법은 있다. 그냥 받아들이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생각과 감정을 컨트롤할 수는 없지만, 그냥 바라볼 수는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 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게 바로 쪼잔하게 마음 한구석에 처박아 두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내가 약해진 순간에 나도 모르게 폭죽 터뜨려 쪽팔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뭐가 됐건 간에, 내 내면한테 친구하자고 부지런히 들이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