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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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07.02)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5. 1. 18:14
요즘 사진 한 장이 나인 경우는 거의 없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 안의 일상 또한. 보이고 싶은 가장 최선의 행복을 힘겹게 찍었는데, 그게 진짜 나와 일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좋게 말하면 예쁜 사진이지만 일체감 없고 지속이란 없는 이 씁쓸함 속에 사진이 주는 간극을 어떻게 매워야 할까. 미의 기준이 보정, 필터, 가짜 미소가 된 요즘 자꾸 나를 누군가의 사진과 비교하게 된다. 사실 가짜로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현실이 따라가기란 아예 불가능하다. 이 가공된 아름다움 속에 계속 빠져있고 싶을 때 따라오는 것은 항상 현실의 헛헛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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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박사 김유나 (20.06.16)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5. 1. 17:45
a.k.a (전)맥주박사, (현)소주박사, 인스타그래머 김유나가 우리 동네 문래에 놀러 왔다. 만약 우리가 결혼을 한다면(?) 신랑 김성수 쪽에 임소라와 함께 보낼 수도 있는 소중한 인력이었다. 12시까지 온다길래 '12시 반 넘어서 도착할 거야'하고 통화 너머로 성수에게 말했더니, 유나가 세상 화를 냈다. 정각에 도착할 것이라 노발대발하더니 전날 술을 마셨다는 진부한 멘트와 함께 늦고 말았다. 오기로 한 계기는, 집들이 선물로 직접 만든 자개 드림캐처를 전해 주기 위해서였다. 뜨거운 햇살 아래 지각생 유나의 손엔 우리에게 줄 선물이 없었다. 그러고는 당장 내일(이미 지남) 택배로 보내 주겠다고, 주소를 물으며 으름장을 놓았다. 우리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얼굴로 화를 내고 있었다. 아마 내년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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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인 (20.06.07)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5. 1. 17:26
김성수는 다 안다. 서로 숨만 들이마셔도 지금 무슨 말을 할지. 불평인지, 조금 전에 봤던 아저씨 이야긴지, 혹은 별말 아닌 농담인지. 갈래가 100% 들어맞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7년 동안 우리가 가장 많이 투자를 한 것은 대화였다. 다만, 가끔은 정말 무서울 때가 있다. 뒤통수만 보고도 내 심리를 파악할 때다. 가령 어제 날이 너무 더워 빙수집에 들어갔는데, 화장실에서 돌아오던 김성수가 내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맛이 없나 보네." 소름이었다. 나는 분명 코를 박고 숟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안 먹고 있었다면 이해나 갈 텐데,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 숟가락질의 타이밍을 보고 알았다고 한다.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다. 친구를 만나고 온 김성수가 집에 오자마자 갑자기 청소기를 돌렸다. 그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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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개구리 해부 수업 (20.05.28)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5. 1. 16:51
회사에 언니 둘이 있다. 31세와 33세. 29세인 나는 31세인 언니와 편을 먹고, 33세와의 세대차이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서른셋에게만 해당되는 과거가 있었으니 바로 국민학교와 황소개구리 해부 수업이다. 언니는 마취가 깬 황소개구리를 마주한 조의 비명 소리가 아직도 선명하다고 했다. 초딩시절 언니는 짝꿍과 함께 고통받을 개구리를 위해 차라리 제대로 죽이고 해부할 것을 고민했다. 착함은 이어진다. 곧바로 선생님께 허락받을 준비를 했다. 그런데, 왜 살다 보면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말 더럽게 못하는 사람 나름 둘이서 윤리적인(?) 토론을 마친 후에, 남자 짝꿍이 대표로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얘 죽여도 돼요?" 이 말을 들은 선생님은 너무 화가 나서 반 모두에게 마이너스를 주었다. "왜 그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