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이 가장 불편했다. 시골에서는 동네 사람 누구든 이 집 저 집 마루에 그냥 놀러 갈 수가 있다. 우리 집엔 마루가 있었고, 뭐든 만들어대는 아빠 덕에 공구를 빌리기 위해서도 사람들이 찾아왔다. 나에게 집은 언제든지 누구라도 불쑥 찾아올 수 있는 곳 마음 한구석에 발소리가 들릴까 매일 마음 졸이며 있는 곳 아빠를 부르든 엄마를 부르든 "유리야" 하면, 헐레벌떡 나가서 "지금 안 계신데요"라고 말해야 하는 곳이었다. 거의 매일 우리집엔 누군가가 찾아왔다. 어렸을 때부터 동네 친구보단 할아버지 할머니가 더 많았으니 쪽수(?)에 밀려 자동 어른 공경을 배운 것인지도 몰랐다. 인사예절도 제대로 받았고, 난 나름대로 예의가 발랐다. 언제나 뛰쳐나가 엄마아빠가 현재 부재중임을 즉각 전달했다. 옷도 항상 갖추어 입고 TV를 봤다. 난 이게 나름대로 큰 스트레스였고 슬픔이었다. 초등학교 때 수학경시대회에 나가라고 1:1로 문제를 억지로 풀게 했던 선생님 덕에 신경성 약을 먹었던 나는 타고난 예민보스였다. 그렇게 나에게 집은 편히 있을 수 없는 곳으로 굳어져 갔다. 지금도 물론, 그게 남아 있다. 그런 나에게도 인생에 가장 편안했던 장소가 있다. 바로 설악산 대피소이다. 내 발로 찾아가 아무런 걱정 없이 곯아떨어질 수 있는 곳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할, 찾아오지도 못할 편안한 장소 나를 찾아오려면 적어도 8시간의(?) 텀이 있다는 안정감이었을까... 그런 감정의 이야기를 성수에게만 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