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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주의보 속 백패킹 (20.08.05)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5. 1. 23:21
배 안은 평화로웠다. 우린 덕적도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맥주 한 캔을 사고, 오징어 굽는 냄새가 미쳤다는 생각에 마른오징어도 한 마리 샀다. 맥주부터 클립을 뒤로 젖히고, 안주를 성수에게 건넸다. 곰곰이 오징어를 들고 있던 성수는 매점으로 향했다. 손에 들고 온 것은 과자 박스를 찢은 한 단면이었다. 바닥에 뭘 흘리기 싫어하는 성격이다. 나는 맥주 한 모금을 먼저 털어 넣었고, 내 무릎을 베고 누워 성수는 구운 오징어를 짝짝 찢기 시작했다. 누런 박스 위에 쌓여가는 안주를 하나 집어들었는데, 오징어가 마치 실같이 얇았다.
"왜 이렇게 얇게 찢어? 혹시 심심해?"
"아니, 딱딱한 거 이빨에 안 좋아."
"아... 오빠도 먹어. 도착하려면 좀 멀었어."
"나는 건강한 이빨로 오래 살고 싶어. 너 많이 먹어."
"......."
그래, 분명 배 안은 평화로웠다. 설렘도 있었다. 3박 4일의 빛나는 여름휴가 중 우린 겨우 하루도 마무리짓지 않은 직장인이었다. 배에 한가득, 이번에 할부로 산 텐트와 햇빛 가리개, 방수포와 침낭 등 우리만의 러브하우스도 있었다. 그렇게 부푼 꿈을 어깨에 짊어 매고서 배에서 내린 그 순간, 이 모든 것들은 그대로 짐이 된다.
정정해야겠다. 내린 그 순간부터는 아니었다. 바람이 꽤 세차게 불긴 했지만 몇몇 지역에 태풍이 불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그 여파겠거니 생각했다. 모래사장에 도착하니 텐트 이웃사촌들이 많이 보였다. 설렘이 또 한번, 크게 가중되기 시작했다. 할부 6개월짜리 새하얀 텐트를 우아하게 던졌다. 원터치의 간편함에 우쭐해 하며 휴가시간을 단축한 데 기뻐했다. 텐트를 쳤으니 맥주를 즐길 차례였다. 성수에게 짧은 자유시간을 허락한 뒤, 세상에서 가장 흥이 난 다리를 굴려 나 홀로 편의점에 갔다.
냉장고에서 꺼낸 맥주가 꽤 차가웠는데도, 나는 차마 캔들을 계산대에 내려 놓을 수가 없었다. 밖에서 폭우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텐트 걱정이 되긴 했지만 발이 묶인 상황이었다. 그만큼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이건 사단이 났다는 생각에 큰 맘을 먹고 철벅철벅 뛰어가기 시작했다. 맥주 캔들이 계속해서 내 종아리를 쳐대서 아팠다. 영화 <괴물>의 마지막 한 장면처럼, 텐트 하나만이 외롭게 모래사장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우리만의 러브하우스에 가까이 다가갔다. 성수는 파란 방수포 위 작은 물웅덩이에, 두 무릎을 고이 담그고 있었다. 그렇게 짠한 성수의 얼굴은 연애 7년 만에 처음이었다. 성수와 텐트는 둘 다 바람에 반쯤 들려 있었는데, 그나마 성수의 가방이 무거워 이 둘을 살려냈다. 머리카락은 물미역으로 변신해 시야까지 앗아간 듯했다.
그렇게 성수는 모든 걸 잃었다. 자연에 모든 걸 기부했다. 올 때는 부푼 마음으로 왔는데, 갈 때는 무소유의 작은 마음을 실천할 수 있었다. 성수의 팬티와 옷가지를 모두 담은 가방 하나가 통째로 사망했다. 그런데 내 가방은 아슬아슬하게 살아 남았다. 혼란의 와중에도 무거운 돌로 텐트를 잠시 눌러 놓고 내 짐만 공용화장실에 던져 놓았더랬다. 물론 침몰 속 화장실이었지만... 엊그제 장염이었던 성수는 언제 아팠냐는 듯 싹 나았다. 이제 약은 그만 먹어도 될 것 같다며 옅은 미소를 짓기도 했다. 큰 시련을 맞닥뜨리면 사람은 정신력과 함께 몸까지 건강해지는 듯했다.
부랴부랴 문광이모(영화 <기생충>)가 된 우리는 가까운 펜션에 들어갔다. 바가지보다 무서운 건 모텔을 연상케 하는 벽지였다. 내일 여행이 어떻게 될지 몰라 무거운 옷가지는 버려야 했다. 양말을 헹궈 텐트와 침낭을 닦아 냈다. 모텔에 텐트를 펼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주 호되게 당했다. 서울집에서 비 구경할 땐 더 왔으면 더 왔으면 했는데, 바람소리가 거셀 때마다 "이 바람 정도면 우린 날아갔다"하고 꽃무늬 이불 속에서 속닥거렸다. 태풍주의보 시즌의 안전지대는 그 어디에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 날 아침, 부스스한 몰골로 바닷가 앞에서 먹으려던 사발면을 분명 텐트 밖이지만 지붕이 있는 실내에서 끓여 먹었다.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우리 둘 다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몇 번씩 배 운행이 취소되고 매진되었다. 조급한 마음으로 휴대전화를 붙잡고 있어도 냉담한 자동 멘트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그래도 직장인 둘은 짤리기 전에 컴백에 성공했는데, 성수는 노팬티에 잠옷바지와 함께였다. 그 잠옷바지도 내꺼였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때는 선상 위에서 마른오징어를 정성스레 찢어 주던, 옷을 갖춰 입은 성수와 함께할 때였다. 그렇게 평안했던 순간 외엔 모든 순간이 번개를 맞은 듯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제에 안 맞게 도련님 심성을 타고난 성수는, 사실 야박을 하기 싫어했다. 그래서 텐트를 구입할 때도 성수는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복귀한 나에겐 할부만이 남았고, 우리의 러브하우스는 그대로 엄마의 손으로 넘어갔다. 굳이 풀셋트를 다 넘길 필요가 있느냐고 내가 따져 물었을 때, 시야를 되찾은 성수는 강인한 눈동자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떤 경우든 결국 여행은 각자의 성향을 더 뚜렷이 드러내 주는 것도 같다. 하지만 뉴스에서 태풍주의보 소식이 들릴 때마다 이 추억을 곱씹곤 한다. 그리고 우리 둘 다, 가장 맛있었던 인생 라면을 이때로 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