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 (20.11.16)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5. 4. 13:46
소라는 꽃을 좋아한다.
그래서 가을 국화를 여러 색으로 골랐다.
성수가 등 뒤에 숨겨서 데리러 나온 소라 앞에 짠 하고 내밀었다. 순간"형, 아침에 부탁한 거 준비해 오셨네요."하고 정식이가 너스레를 떠니, 성수가 "그럼!"하고 받아주었다.
꽤 친해졌구나 싶었다. 서로 번호도 모르면서...
탁 트인 야외 카페에서 커피와 맥주를 마셨다.
소라는 휴대폰을 보며 주문한 고기가 아직 도착을 안 했다며 걱정을 했다.
소라는 자기 집에 우릴 초대하면서 정말 많은 준비를 했다. 내가 먼지 알러지가 있어 침구와 옷가지도 전부 빨아 놓았다.
지도 눈썹 휘날리게 바쁜 직장인이면서.
누군가에게 음식을 해 준다는 게 얼마만큼의 애정과 마음이 담긴 것인지, 셀 수 없는 종류의 것이란 걸 안다.
음식을 구상하면서 재료들을 사면서 접시를 고르면서 술을 준비하면서, 모든 순간에 나와 오빠를 생각해 주었을 것이다.
소라는 작고 사소한 재료에도 김성수와 나를 담았다.
성수가 좋아하는 라자냐는 베샤멜과 토마토소스까지 직접 만들어 겹을 쌓았고, 연어구이는 월계수와 레몬으로 냄새를 잡았다. 조바심을 줬던 토마호크는 제때 도착해 하나가득 구워 산을 쌓아 주었다. 피클과 무생채도 소라가 직접 담갔다.
소라의 분주했던 일주일이 그려졌다.
김치찜까지 먹을 땐 정말 배가 터져 실려나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가스, 오븐, 에어프라이어가 동시에 돌아가는 진풍경을 보았고, 결국 두꺼비집이 내려갔다.
정작 주인은 아무렇지 않아 했다.
성수가 좋아하는 하이볼도 만들어 줬다. 위스키가 닳아갈 때마다 한참을 웃으며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억지로 분위기를 맞추지도, 억지로 웃지도 않았다.손에 꼽을 정도로 편한 친구들과 아주 편안한 저녁 식사였다.
잠시 내가 자리를 떠나도 셋이 웃어대는 소리가 한참 듣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