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바다가 배경인 곳을 실컷 걸었다. 끝없는 바다를 눈으로 담아 꽤 넉넉한 마음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뜬금없이 안양천이 떠올랐다. 떠올랐다기보단 약간의 그리움이 솟았달까. 안양천은 내가 매일 밤마다 산책을 하는 곳이다.
천 건너엔 부자 동네 목동 아파트가 줄을 지어 서 있다. 퇴근을 마친 사람들이 자랑하듯 실내등을 켜 야경이 아주 볼만하다. 조경이 잘 조성되어 있는 것도 물론이지만, 한번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에너지가 사실 더 볼만한 곳이다.
쫄쫄이로 세트를 이룬 아저씨 자전거 군단, 밤잠 없는 밤을 꼭 잡은 손으로 달래러 나온 노부부, 뱃살을 빼자는 목적이었겠지만 앉아서 수다만 떠는 아줌마들, 탕- 탕- 탕- 시원한 농구공 소리와 함께 걸쭉한 욕도 같이 내뱉는 고딩들, 딱 봐도 저희 썸 타고 있어요 소문내는 듯한 커플들, 힘겹게 종종걸음 하며 재활치료를 하는 할아버지, 굳이 조명까지 달고서 롤러스케이트를 타러 나온 초딩 등등
자연한테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때론 사람들로부터 위로받는 게 더 클 때도 있는 것 같다.
저 사람도 오늘 회사가 거지 같았을까. 그래서 숨을 쉬러 나왔을까. 저 사람도 조미료와 패스트푸드가 몸속에 그득할까. 그래서 운동을 하러 나왔을까. 저 사람도 매일 밤잠을 설칠까. 그래서 시간을 때우러 나왔을까. 저 사람도 내일 첫 출근에 설렐까. 그래서 힘을 좀 빼러 나왔을까. 저 사람도 조금 전 열불 나는 일이 있었을까. 그래서 바람을 쐬러 나왔을까.
나와 같은 혹은 같았던 혹은 언젠가 같을 수도 있는 하루를 마치고 하나둘씩 모여드는 동네 사람들. 나와 같은 사람과 발맞춰 걷기도 하고, 나와 너무도 다른 사람과도 발을 맞추어도 보고 이 사람 저 사람 입에서 나오는 작음 소음들에 기분 좋은 에너지를 귀담아 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