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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머치 토커 저자 (20.03.20)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4. 29. 11:49
디자인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저자의 원고를 읽는데, 앞으로 구상해야 할 모든 디자인이 저자의 글쓰기 방식에서 보일 때가 있다. 그 사람도 모르게 집필을 할 때 상상하는 책의 이미지가 글로 표현된 것이다. 원고를 검토할 때 그것이 보이면 일이 재밌어진다. 텔레파시가 통한 것인가. 지루하고 단순한 교정지가 아니라 앞으로 입힐 디자인이 내내 상상되고, 완성된 책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렇게 재밌는 원고를 만났고, 담당까지 이어져 저자와 미팅을 한 이틀 전 투 머치 토커 저자와 네 시간을 내리 앉아 기가 다 빨릴 줄을 누가 알았을까. 팀장님은 글 속 저자의 의도를 알아내는 것이 편집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했거늘! 알아주셔서 고맙고 나도 알게 해 주어서 참 고맙지만, 그래도 서로 진이 다 빠진 건 사실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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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기획안 (20.03.19)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4. 29. 11:26
내고 싶은 책의 기획안을 내가 쓸 때도 있지만, 가끔 예비 저자들이 정성껏 회사로 보내줄 때도 있다. 기획 의도, 책 제목 가안, 예상 독자, 본인이 생각하는 구성과 목차, 시장 환경 등등 치사하지만 회사 차원에서는 이 책이 몇 부나 팔릴 수 있을 것인지, 시장이 너무 좁은 것 같은데 잘 팔 수 있는 홍보의 수단은 있는지, 인맥이 있는지... 점점 치사해져도 '돈'을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요즘은 심지어 '유튜브 촬영은 가능한가?'가 기본이 되었고 이렇게 치밀한 질문에 지쳤던 어떤 저자는 경쟁 출판사에서 아무도 내고 있지 않으니 그냥 내자고 할 때도 있다. '책을 직업으로 하고 싶다'라고 할 때의 나는 물론 그 책의 내용만을 즉, '필요로 쓰였으면 하는 확장된 시선이나 감정'을 더 좇았지만 이게 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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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20.02.16)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4. 29. 11:26
미술관 갈 땐 눈뜨는 대로 세수만 하고 몸을 가볍게 하고 가는데 김성수 피셜, '무섭게 집중하는 눈썹 없는 유관순' 같다고 하였다... 요즘 좀 강박적으로 집착을 버리고 싶어서 책과 일기장을 거의 없앴다. 내 말이 아닌 것들은 한번 다 버려보고 싶었는데 버렸고, 오늘 국립에서 새로운 책 세 권을 샀다. 즐거웠다. 나에게 미술관은 가끔 무서운 곳이다. 가장 즐거웠던 전시는 김아영 작가였다. CIPP는 당신이 움직이는 곳 어디든 함께합니다! 당신이 어디에 있건 당신이 정보 그 자체입니다. 여러분의 신상 정보와 풋프린트는 암호화되어 자동 추적되고 관리됩니다. 당신은 소중한 데이터이니까요...! 김성수와 눈을 마주치며 연신 '무섭다!'를 작게 외쳤다. 금세 지루해져서 밖을 나와 산책을 오래 했지만 오늘은 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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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과 설악산 (20.02.09)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4. 29. 11:23
내 생일 산과 바다에 왔다. 설악산 하산은 엉덩이로 해야 한다. 브레이크는, 아이젠으로 해야 한다. 나부터 아줌마 아저씨들까지 전부 쌩엉덩이로 썰매를 탔다. 등산객 발자국 따윈 없었고, 한 발만 내딛어도 미끄러지는 산 미끄럼틀만 있었다. 꼬리뼈가 사라지고, 팬티가 다 젖고, 신발 속 발은 댕댕 불었지만 하나도 춥지 않았다. 정말 신이났기 때문이다. 산을 오를 때, 바다를 볼 때, 금세 지루해지곤 했다. 너무 호흡이 짧아졌다 싶었다. 나는 지루해지면 바로 손을 놀려 순간순간 채워줄 자극을 찾았다. 이것이 온몸에 뱄다. 짧은 영상에는 정말 짧은 호흡이 들어있다. 나는 호흡이 정말 정말 많이 짧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