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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20.03.26)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4. 29. 14:13
아주 미친 듯이 집요하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분명 모순된 감정이 들어 충돌하고 있는데, 이게 왜 계속 찝찝하게 은연중에 남아 있으며 심지어 방어기제로 자꾸 누르려고 하는지. 어떻게 해서든 그 이유를 끄집어내서 알고 말아야 한다. 그래서 책을 읽게 되었다. 때에 따라 모순에 직면해서 제대로 알고 풀어내고 싶었는데, 주위에 물어 볼 사람이 없었다. 나는 이걸 해결을 안 하면 평생 숙제를 하나 가지고 사는 기분이 든다. 숙제를 풀고 싶었다. 이유는 여유 때문이다. 어느 때쯤이면 어떤 사건에도 여유가 있고 싶었다. 낯선 것이 와도 큰 파도를 가볍게 타고 싶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볍게 신경을 끄고 싶었다. 낯선 것을 막을 대비란 없다. 그리고 나는 별로 그런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어쨌든 그래서 숙제를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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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03.25)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4. 29. 12:41
헤밍웨이는 모든 초고가 걸레라고 했다. 나는 이 말에 공감한다. 나도 정말 못 쓰기 때문에, 누구보다 공감할 수 있다. 걸레에 담긴 의미는 두 번 써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 번은 다음과 같다. 감정대로 다 끄집어 쓰기 빨강의 감정이면 빨강의 느낌을 다 쓰는 것이다. 두 번째 쓰기는 추스르는 단계이다. 아주 이성적으로 쓴다. 생각을 다듬고, 자르고, 깔끔하게 붙인다. 마치 읽을 사람에게 주는 선물 포장과 같다. 남에게 주든, 나에게 주든.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 생각엔...... 일단 쓰기를 안 하면 생각은 바로 패스이기 때문에 인생이 편해진다. 감정 정리 없이 오늘도 맥주 속에 패스! 미묘한 감정이 왜 들까, 고민 없이 고뇌 속 가녀린 슬픈 여주인공이 되어 패스! 그다음, 첫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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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증 (20.03.22)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4. 29. 12:25
김성수는 365일 카톡 프사도 기본형이고 SNS도 전혀 하지 않는다. 인스타, 페북, 트위터 등등 굳이 인스타를 하지 않아도 내가 아는 사람들 혹은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어떻게 뭐 먹고 사나 구경은 할 수 있지만, 오빠는 그마저도 안 한다(유일하게 할 때는 단골 사장님이 인스타로 그날그날의 메뉴가 바뀐다거나, 휴무라던가 하는 공지들을 파악하는 정도). 그래서 내가 바라보는 김성수는 관음이 별로 없다. 요샌 그저 관음증 시댄데. 어떤 여가수가 대학 축제 때 가슴이 노출될 뻔했다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아주 작은 스마트폰의 스크린을 이용해 남의 가슴까지 몰래 훔쳐볼 수 있게 됐다. 나만의 극장들이 생겨 이게 아주 은밀하게 가능해졌다. 물론 김성수도 아주아주 궁금할 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열혈 서핑을 시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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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멘트 (20.03.21)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4. 29. 12:08
작년에 함께 작업했던 선생님은 이탈리아에 계신다. 의료 책이었다. 원고도 카톡으로만 주고받으며 진행했는데 같은 여자이고 젊으셔서 작업이 편했다. 며칠 전 독자 문의 전화가 와서 나는 양해를 구했다. "저자가 유럽에 거주하셔서 답변을 확인하는 데 시차를 두고 내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전화를 끊고 반년 만에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이러저러하니 독자에게 답변드릴 말씀을 부탁드린다고 어찌나 길고도 복잡하게 보냈던지. 물론 '편안한 저녁 보내세요'와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같은, 인사치렛말도 덧붙였다. 다만 그게 요즘은 시국 멘트였다. 한 줄짜리. 그런데 나는 사실 '코로나'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진짜'로 생각하진 않았다. 출근 전 뉴스를 듣는데 어제의 주요 뉴스는 이탈리아의 코로나 19 하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