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기 스물여덟
-
재즈와 즉흥성 (20.03.29)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4. 29. 15:31
나는 케이팝스타를 참 즐겨 봤다. 지금도 가끔 유튜브로 이미 질리도록 본 장면을 또 볼 때도 있다. 나에게 있어 아마 재미의 요소는 긴장감, 성장 과정, 립싱크 불가, 박진영이었다. 공기반 소리반은 가수 지망생도 아니라 잘 모르겠고, 즉흥성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저 잘하는 것보다 가능성에 점수를 주곤 했던 프로그램의 특성상 '흉내'는 탈락이었다. 본인만의 것이 한 가지라도 있어야 합격이었다. 여기서 본인만의 것이란 즉흥성이다. 순간적으로 내가 만들어 낸 요소 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정형화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잘못 말했다. 정형화된 기준을 깨려고 연주를 하기보다는 시작부터 본인이 아니라면 만들 수 없는 리듬으로 출발한다. 두 번 다시 똑같이 반복될 수 없는 연주로 곡 하나가 끝이 난다. 같은 ..
-
나는 칼퇴 (20.03.28)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4. 29. 14:54
1년 정기 칼퇴 모범자인 나는 할 일이 남았어도, 열정의 불씨가 남았어도, 사장님이 계셔도 칼퇴를 했다. 눈치 보일 때가 없었나 물어보면, 아예 없었다고는 말 못하지만 신입 때 결심했다. 하루 8시간도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라고 나는 칼퇴를 잘하는 사람으로 사람들에게 얼른 낙인을 찍자고 다만 조건은 있는데, 일을 어느 정도는 눈치껏 해야 하고 회사 사람들과 두루 친해야 한다. 안 그랬으면 나는 이미 백번 짤리고 없었다. 지금은 6시 1분에 칼퇴를 해도 양심이 아주 털로 따끈따끈한데 하여튼 나는 일이 재미있어도 내 인생은 퇴근 후에도 시작되어야 한다는 주의였다. 그리고 아무래도 일보단 노는 게 더 재미있으니 회사에서 에너지를 다 쏟고, 실제로는 다 쏟지도 않았는데 그 에너지를 스스로 위안한답시고 ..
-
이탈 (20.03.27)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4. 29. 14:40
사실 나는 소설을 잘 못 읽는다. 긴 호흡을 잘 못 버티기 때문에 오히려 인문학이나 철학이나 미술사나, 어쨌든 그런 것들이 더 맞았다. 바로바로 딱딱 논리가 맞아 따라가는 데 더 쉬웠다. 어려워도 호흡이 짧아 지루할 틈은 없었기 때문인 것도 같다. 그래도 좋아하는 소설가는 있다. 어쨌든 내가 추상적인 문장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폭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단어는 폭력적이다. 명확해서 설명할 수 없는 게 오히려 아주 중요한 것이었고, 설명할 수 없으니 각자 자기만의 느낌으로 표현하려 애썼다. 자기만의 느낌과 표현들이 있으니 아름다웠다. 다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것들이 없으니. 그러다 보니 추상적이 된다. 비밀을 파헤치려다 보니까 그렇게 쓴 것이다. 보물 지도를 찾아가려다 보니 빙빙 돌게 된 것이다. 바로 볼..
-
모순 (20.03.26)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4. 29. 14:13
아주 미친 듯이 집요하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분명 모순된 감정이 들어 충돌하고 있는데, 이게 왜 계속 찝찝하게 은연중에 남아 있으며 심지어 방어기제로 자꾸 누르려고 하는지. 어떻게 해서든 그 이유를 끄집어내서 알고 말아야 한다. 그래서 책을 읽게 되었다. 때에 따라 모순에 직면해서 제대로 알고 풀어내고 싶었는데, 주위에 물어 볼 사람이 없었다. 나는 이걸 해결을 안 하면 평생 숙제를 하나 가지고 사는 기분이 든다. 숙제를 풀고 싶었다. 이유는 여유 때문이다. 어느 때쯤이면 어떤 사건에도 여유가 있고 싶었다. 낯선 것이 와도 큰 파도를 가볍게 타고 싶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볍게 신경을 끄고 싶었다. 낯선 것을 막을 대비란 없다. 그리고 나는 별로 그런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어쨌든 그래서 숙제를 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