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기 스물여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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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20.04.08)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4. 30. 11:19
문장이 시작되었지만 마침표는 기약이 없다.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을 때쯤, 마침표부터 찾아보게 된다. 저어 아래에 있다. 그 사이 저자의 문장은 길을 잃었다. 서너 차원의 주술관계가 쓰였고, 호응 관계는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이렇게 되면 내가 마침표를 박아 넣어야 한다. 문장을 구분 짓기 위해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그러고도 구분이 안 되면, 이건 그냥 말이 아닌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왜 말이 안 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또 읽어야 한다. 이해를 제대로 시키기 위해, 말이 안 되는 문장마저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짝꿍한테 오답풀이를 해 줄 때, 그 공식만큼은 내가 전문가인 것처럼 한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열 번은 읽어야 하는 아주 심오하고도 뜻깊은 문장들이다... 정말 한 번 쓰고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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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20.04.07)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4. 30. 10:47
물리학을 공부하는 한 여자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앞길이 뻥뻥 뚫린 의사가 될 남자! 잘생기고 몸도 좋은데 심지어 나를 너무 사랑하기까지 한다. 모든 게 끝났다. 이제 이 여자의 인생에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아이를 낳고, 공부를 하고 싶으면 마음껏 공부하며 그런데 이 평탄한 길에 다른 남자가 있다. 30살 많은 대학 교수이며 이 여자의 수업을 담당하는 한없이 편안하며 나의 모든 걸 말할 수 있는 남자 내 정신을 그대로 던질 수 있는 남자 감정이 통하며, 내 감정이 숨을 쉴 수 있는 남자. 두 남자 사이에 있던 여자는 어느 순간 결정을 내린다. '의사가 될 남자도 못지않게 사랑한다고' 인생 처음의 관계를 맺어, 삶의 구멍을 뚫었다. 정확히 콜린(의사가 될 남자)만한 크기와 모양의 구멍을 통해 여자는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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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20.04.01)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4. 29. 22:03
가끔 이것만 있으면, 또 저것만 있으면 행복해질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리고 이것을 반복해서 스스로 우겨댈 때가 있다. 스스로 걸어대는 주문을 넘어 또 가끔은 남한테 보여졌을 때 행복해 보일 것 같은 느낌에 집착하게 될 때도 있다. 뭐가 됐든 이게 심하다 싶으면 이제 여기서 나의 악마는 싹이 튼다. 한낱 쓸모없는 집착이! 이런저런 것이 없어서 내가 불행하다는 결론은, 한번 잘 고민해 봐야 한다. 그 불행의 원인이 불쌍한 '나'에게 있는데 불쌍한 나를 '억누르는 수단'으로 이런저런 것을 욕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욕망이 과할수록 오히려 불쌍한 나에게서 눈을 감고 싶은 것 같다. 이런저런 것을 돈을 주고 사서 갖추든 한 사람을 기어코 나에게 맞추어 갖추든 가지고 났더니 행복이 아니라 더 깊은 심연 속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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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일기 (20.03.31)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4. 29. 20:06
오늘은 퇴근길에 맥주를 사 가야겠다. 얼마 전 이마트에서 맥주 할인 행사를 시작했다. 유리가 좋아하고, 나도 가끔 마시기 때문에 조금 사 두었다. 맥주는 금세 동이 난다. 유리는 학원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와서는 바로 맥주를 마신다. 벌컥벌컥 참 맛있게도 마신다. 유리는 혼자 베트남에 열흘간 떠나서는 매일 맥주를 세 병씩 마셨다. 영상통화를 할 때마다 항상 취해 있었다. 함께 재활용을 내놓을 때, 나는 장난을 쳤다. "나는 한 캔밖에 먹은 기억이 없는데, 이 맥주 캔들은 다 누구 거지?" 잔소리를 하려던 것은 정말 아니었다. 나는 유리를 놀리는 데 가장 머리가 비상하다. 매해 우리나라에서 코딩 대회가 열린다. 나는 경험 삼아 출전해 보려고 한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다. 요즘 나는 매일 내가 푼 코딩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