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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 (20.03.27)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4. 29. 14:40
사실 나는 소설을 잘 못 읽는다.
긴 호흡을 잘 못 버티기 때문에
오히려 인문학이나 철학이나 미술사나, 어쨌든 그런 것들이 더 맞았다. 바로바로 딱딱 논리가 맞아 따라가는 데 더 쉬웠다.
어려워도 호흡이 짧아 지루할 틈은 없었기 때문인 것도 같다. 그래도 좋아하는 소설가는 있다.
어쨌든 내가 추상적인 문장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폭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단어는 폭력적이다. 명확해서
설명할 수 없는 게 오히려 아주 중요한 것이었고, 설명할 수 없으니 각자 자기만의 느낌으로 표현하려 애썼다.
자기만의 느낌과 표현들이 있으니 아름다웠다.
다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것들이 없으니.
그러다 보니 추상적이 된다.
비밀을 파헤치려다 보니까 그렇게 쓴 것이다.
보물 지도를 찾아가려다 보니 빙빙 돌게 된 것이다.
바로 볼 수 없기 때문에 가려져 있지만, 그래서 신비하기도 하다.
그래서 들추고 싶기도 하다. 홀딱 벗은 몸보다 비치는 속옷을 입은 몸이 더 섹시하다.
바로바로 찾을 수 있는 복제품들은 따분하다.
그저 따라할 것이 아닌 것들
따라가고 싶어도 나만의 해석을 만들지 않으면 못 갈 곳들
단언 지어서는 말해질 수 없는 것들
개념 하나에 묶이지 않고 자꾸 뭐가 새는 것들
그래서 이탈되어 있고, 그래서 더 자유로운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