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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20.04.08)남의 일기 스물여덟 2021. 4. 30. 11:19
문장이 시작되었지만 마침표는 기약이 없다.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을 때쯤, 마침표부터 찾아보게 된다.
저어 아래에 있다.
그 사이 저자의 문장은 길을 잃었다.
서너 차원의 주술관계가 쓰였고, 호응 관계는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이렇게 되면 내가 마침표를 박아 넣어야 한다.
문장을 구분 짓기 위해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그러고도 구분이 안 되면, 이건 그냥 말이 아닌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왜 말이 안 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또 읽어야 한다.
이해를 제대로 시키기 위해, 말이 안 되는 문장마저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짝꿍한테 오답풀이를 해 줄 때, 그 공식만큼은 내가 전문가인 것처럼
한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열 번은 읽어야 하는
아주 심오하고도 뜻깊은 문장들이다...
정말 한 번 쓰고 다시는 안 읽어 본 것일까? 자기 글인데...?
아니다. 이제는 이해심도 넓어졌다.
다시 읽어 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말과 글은 느낌이 아주 다르다.
일단 원고면 글이지 않은가.
그저 말하는 것처럼 끝맺음이 불명확하면, 그 끝맺음은 누가 맺는가!
독자가? 내가? ...내가......(사실 교열에 쥐뿔의 능력도 없는 내가...)
쓰는 사람은 한 명이지만 이걸 읽는 사람은 몇 배에 배가 될 텐데,
읽는 이에게 정리 시점을 주지 않는다면, 글은 왜 쓰는 걸까?
정리된 내용이 없는데.
주량이 한참 적어진 나는 오늘도 맥주 두 캔에 노트북을 부시다 잠이 든다...
괜히 서러울 때도 있다.
원고 마감일에 쫓기는 저자보다, 출간 마감일에 쫓기는 내가 더 급할 때.
자기 책인데, 내가 더 많이 읽을 때...
글의 아주 일부일부를 교정하는 게 아니라, 그냥 단락별로 통채로 다시 쓰는 게 진행 속도가 더 빠를 때
이때 나는 김성수에게 카톡을 한다.
맥주를 넉넉히 채워 놓았으면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