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6일. 월. 서울. 쌀쌀함. 참으로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무얼 써야 할지 모르겠다. 내 안에 목소리는 가득하다. 일기감으로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유리에 대해서 써 보자. 가장 익숙한 존재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여기서나마 낯설게 바라보고 싶다. 이유리. 우리가 만난 건 2012년 어느 봄날로 기억한다. 내가 알바하던 곳에 나보다 약간 늦게 들어왔다. 작은 키. 얇은 뼈대. 마른 몸. 그것을 잊게 만드는 명료한 목소리와 차분한 태도는, 내겐 매력으로 다가왔던 듯하다. 남자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른에게 주눅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뻣뻣한 것은 아니다. 목소리처럼 행동도 예의바르고 정갈하다. 흔들림 없는 눈동자처럼 배움과 일손이 빨랐다. 참 신기한 존재였다. 그녀보다 3살이 더 많은 나는 민들레 홀씨처럼 주변 입김에 이리저리 휘날리기 바빴건만, 그녀는 벌써부터 땅속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지금은 안다. 그녀가 어린 나이에 중심이 잘 잡혀있었던 이유를. 누구보다도 빨리 존재와 삶에 대해 고민했던 것이다. 예민한 성격 탓인지 초등학교 때부터 그런 고민들을 조금씩 해왔다고 한다. 또래 아이들이 게임이나 이성에 몰두할 무렵, 그녀는 우울을 겪었다. 그리고 고독을 느꼈다. 그녀의 호기심은 다른 곳을 향했다. 철학은 실마리를 주었다. 그리고 위안을 주었다. 처음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녀는 어쩌다 나에게 정을 품은 걸까? 아직도 아리송한 부분이다. 나는 그녀를 만나 나의 괴팍한 성격을 이해받았다. 나는 그녀보다 체온이 높은 편이다. 그녀는 내가 따뜻해서 좋단다. 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도 그녀에게서 온기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