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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남의 일기 서른둘 2024. 12. 2. 23:49
사랑을 시작할 땐 나도 모르게 거짓말쟁이가 될 수도 있다.상대에게 잘 보여야 하기 때문에 생각을 잠시 주춤하게 되고, 그 사이 내 입술은 다른 문장을 내뱉게 될지도 모른다.하지만 귀여운 일이기도 하다.사랑에 빠졌을 때의 자신은 이미 자기가 아닌 상태이기 때문이다.설레고 떨리고 들뜬 마음은 평소와 다른 나를 만든다. 상대가 좋아할 만한 그림으로 나를 칠하게 된다.물론 거짓말을 내뱉는 순간 상대방을 속이기도 전에 나를 먼저 속이게 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엔 곧바로 깨달을 거다.상대방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스스로와 먼저 가까워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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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남의 일기 서른둘 2024. 12. 1. 22:27
자유란 무엇일까. 거창하고 심오하게 생각하면 끊임없이 이야기가 전개될 터이니 나는 아주 가볍게 정의해 보려고 한다.아침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자유.반대로 해야 할 일이 반드시 정해져 있어서 선택권조차 없다면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그렇다면 모든 이가 자유로운 사람 아닌가?맞다. 난 그렇다고 생각한다. 돈을 벌기 위해 출근을 해야 하니 선택권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어쨌거나 하루를 연차로 쉴 수도, 그냥 출근해서 근무를 할 수도, 영원히 퇴사를 할 수도, 혹은 나 몰라라 잠을 자버릴 수도 있는 무궁무진한 선택권 앞에 서 있는 우리 모두는 자유로운 사람들이다.자유롭다니, 어감상 가벼운 마음이 일수도 있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무거운 단어가 아닌가 싶다.우리 각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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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날도 아닌 날남의 일기 서른둘 2024. 11. 30. 21:28
성수와 손을 잡고 저녁 산책을 하고 오는 길에 동네 꽃집에 들렀다.아무 날도 아닌 날인데 그냥 꽃을 샀다.나는 빨간색 튤립과 보라색 패랭이꽃을 골랐다.곧바로 집에 가서 화병에 꽂을 것이기 때문에, 포장은 간단히 해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특별한 날에는 화려한 꽃다발이 기쁨을 배로 북돋아 주지만,오늘같이 보통의 날에도 소박한 포장지 속의 강렬한 꽃잎이 내내 하루를 설레게 만들어 준다.아무 날도 아닌 날에도 성수와 몇 송이의 꽃만 있으면 여느 때 못지않은 특별한 날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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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바람남의 일기 서른둘 2024. 11. 29. 22:54
정신은 무한한 것으로, 육체는 유한한 것으로 표현하곤 한다.하지만 육체 없이 정신이 있을 수 없고, 정신이 없는 육체 또한 없으니 사실 이분법적인 구분은 불필요하다.흔히 꿈은 무궁무진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사실은 한계가 분명히 설정되어 있다. 육체의 몸으로 경험해 본 것들만 나의 정신에 각인되기 때문에, 무한해 보이는 꿈조차 내가 겪은 경험의 재구성일 뿐이다.책으로 만날 수 있는 먼 과거의 정신(영혼)들도 무한히 살아가는 듯해 보이지만, 결국 그들도 육체가 없었다면 영혼을 남길 수 없었을 것이다. 정신을 육체보다 더 높은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무한을 엿보려고 노력하는 유한한 자의 고군분투가 눈부시다. 잘 다듬어진 고귀한 영혼도 결국 작은 몸짓 하나로부터 바람이 이는 것이기 때문이다.나도 가끔 무한을 엿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