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말한 인간 정신의 3단계는 다음과 같다.
낙타-사자-어린아이:
낙타는 등에 짐을 지고 사막을 걷는다.
우리도 짐을 진다.
나를 안전하게 보호해 준 부모에게 빚을 갚기 위해 짐을 지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가장의 짐을 지고
내던져진 시스템에 맞춰야 해서 짐을 진다.
그렇다고 계속 힘겨울 수만은 없다.
주어지는 대로 사는 듯하고, 몸과 마음이 무겁다면 꼭 고민해 봐야 하는 단계이다.
니체가 가장 낮은 단계의 의미로만 낙타를 말한 것은 아니다.
한 번쯤은 겪어 봐야 하는 단계
노동의 수고로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배려 등은 꼭 한 번 제대로 경험해야 한다.
다음 단계는 사자이다.
주어진 질서를 부정해보고 당당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한다.
하지만 왠지 외로워 보인다.
자유의 이면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 김성수가 이모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친척 동생이 이런 말을 했다.
"결혼을 왜 안 해? 당연히 해야 하는 거잖아."
김성수랑 나는 좋아해서 함께 산다.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한 것이라면 좋아하니까 붙어 있다는 것 정도.
당연하다는 것을 의심해 보는 단계
그래서 나에게 맞는 것을 조금은 새롭게 찾아가 보는 단계
대신 시스템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가끔은 눈치도 보이고 소외되기도 한다.
그래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하는 단계
본인의 선택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눈빛은 대체로 동공지진인 상태, 사자이다.
마지막 단계는 어린아이이다.
어린아이를 보면 새롭게 만나는 모든 것에 선입견이 없고 망설임도 없다.
낙타도 아니고, 사자도 아니다.
주어진 상황에 짐을 지지 않으면서도 사자같은 자유로움 속에 동공지진도 없는 상태.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기존의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창조적 단계.
친척동생과 놀아줄 때 상황극을 하고는 하는데, 그때 주변의 사물들은 정말 모두 다시 새로 태어난다.
하지만 어린 아이라고 책임이 없는 상태를 말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낙타와 사자의 정신 상태를 거친 어린아이의 단계를 말하고 있으니까.
낙타라면 시스템에 맞춰 몸이 무거워도 수용하며 따라가고, 사자라면 기존 질서를 부정해 보면서도 마음은 불안할 수 있다.
어린아이는 자연스럽게 흐르면서도 본인의 행동 속에서 즐기는 상태를 말한다.
에너지가 있는 상태
이게 니체가 말하는 초인으로 이어진다.
니체의 평생에 걸친 고민답다.
이건 뭐, 써머리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