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을 엄청 꾼다.
시리즈로도 꾸고, 복붙해서 똑같이 꾸고, 힘겹게 깨도 또 꿈인 인셉션꿈도 꾼다.
꿈은 '무의식'의 표출이다. 억압되었던 나의 무의식이 변형되어 나타난다.
변형되는 이유는 무의식이 대부분 '욕망'의 억압이기 때문이며, 욕망은 대체로 사회적 통념상 비도덕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꿈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소망 충족에 있다.
프로이트가 꽤나 멋진 것은 욕망의 영역을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보고, 토론할 수 있도록 끌어올린 데 있다.
우리는 욕망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사회는 욕망을 억압하며 분열된 삶을 강요한다.
우리의 우울들을 대부분 그 분열에서 온다.
꿈은 평상시 우리의 생각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외딴 나라에 한 달간 영어도 못하고 혼자 벙어리 여행하던 시절, 묵언수행 저리가라였다.
어쨌든 당시 꿈을 하나 꾸었는데, 낯선 방 안 TV에서 영어 뉴스가 보였다. 밑에 자막도 흘러갔다.
당시 나는 《꿈의 해석》을 읽은 뒤였다. 나는 영어를 쥐똥만큼도 못한다.
나의 뇌 용량 한계로만 꿈을 꿀 수 있다면, 저 소리랑 자막은 어떻게 들리는 거지?
꿈 베테랑인 나는 물론 자각몽을 꿀 수도 있다.
"내가 저렇게 자막을 쓸 수 있다고?"
들리기는 어디서 주워 들은 걸로 얼버무리는지, 하여간 들리긴 들렸다.
그런데 자막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꿈속 나는 TV에 다가갔다. 눈을 가늘게 뜨고 갔던 것 같다.
집중해서 도착해 보니 알량한 몇몇 단어와 흐린 말도 안 되는 알파벳 조합들.......
생전 처음으로 자각몽인 꿈속에서 썩은 미소를 지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