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국내 작가,라고 하기엔 주로 외국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아마 책도 독일어로 먼저 쓰이고 한국어로 번역되는 것 같다.
한병철의 신간 소식이 들리면 나는 예외 없이 주문해서 읽는다.
난 원래부터 읽는 속도가 느리다.
좋게 말하면 정독이라 할 수 있겠고, 나쁘게 말하면 이해력이 좀 느리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 나에게 한병철의 글은 간혹 한두 장을 읽는 데에도 삼십 분이 소요될 때가 있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에 담겨 있은 압축된 사유를 따라가기가 벅차다.
하지만 그의 문장은 굉장히 짧고 간결하며 명쾌하다.
나는 읽었던 문장의 첫머리로 다시 돌아가며, 한 문단을 곱씹고 또 곱씹어 꾸역꾸역 소화해 내며 이런 생각을 한다.
그의 시선은 얼마나 깊이 있게, 이 세상 다양한 것들에 머물렀던 것일까.
나는 세상 어떤 것에도 오래, 애정과 진심을 담아, 이성적 사고를 하며, 때로는 감정적 소통을 하며 머물러 본 적이 없다.
굉장히 짧은 호흡으로, 시선을 가볍게 두고, 매번 재빠르게 몸을 돌려 깊은 사유를 할 물리적 여유를 갖지 않았다.
짧고 빠르기만 한 요즘, 길고 느린 호흡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 시선을 오래 붙잡아 둘 수 있어야, 오랫동안 시선을 빼앗길 만한 소중하고 반짝이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것에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한없이 깊고 고요한 나만의 시선을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