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족한 모습과 밑바닥을 가장 많이 캐치하는 건 아마 남편일 것이다.
나는 나의 그런 모습을 애써 감추려고 오히려 그를 나무랄 데가 있다.
예민하지 않은 그는 나의 공격에 의문을 품기보다는 자기를 탓하거나 답답해하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나쁘고 그가 착하다.
나의 못난 모습은 내가 아닌 모습을 나와 동일시할 때 나타나기 시작한다.
나는 어설프게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완벽하길 바란다.
이미 이 자체로 나는 틀렸다.
모든 상황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완벽을 어떻게든 메꾸기 위해 남편을 끌어들인다.
머릿속으로 내 역할과 남편의 역할을 나눠서 그에게 시키기 시작한다.
이미 자기 그 자체로 있는 성수는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나의 어설픈 완벽주의가 어설픈 지시들을 낳는다.
우왕좌왕 그 자체다. 당연하다. 나도 할 수 없는 일을 그에게 바라고 있으니. 어불성설이다.
그래도 가끔은 지시라도 내릴 수 있게 모든 상황을 서라운드로 보는 사람은 여자의 뇌밖에 없는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흔히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은, 오히려 여자들은 왜 저렇게까지 상황을 복잡하고 피곤하게 만들까 의문을 갖는 남자의 뇌를 나는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생살이의 모든 열쇠가 그렇듯, 나는 나로 있어야 하고 내 분수를 잘 알아야 한다.
내가 아닌 모습을 나와 동일시하는 건, 그 사이의 간극 속에 풍덩 빠져버리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익사해서 지치는 건 나뿐만 아니라 내가 같이 목을 잡고 뛰어내린 남편도 포함한다.
이 바보같은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