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한 컵 가득 원샷을 때리며 엄마가 말했다.
"나는 유리가 정말 이상한 사람을 데려오면 어쩌나 걱정했어. 얘가 어떨 땐 좀 특이한 구석이 있어서 그때의 지같은 사람 데리고 올까봐. 그러면 정말 큰일인데, 우리 성수같은 사람이 와서 정말 얼마나 넘치게 행복한지 몰라."
벌써 아흔아홉번째 고백이었다. 사랑해 마지않는 사위를 향한.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빠는 오늘을 최고로 잘 끝냈다는 자축의 소주병을 기울였다. 오늘의 일은 피로연, 무주 마을 잔치였다.
흐르는 투명 액체를 받으며 나는 생각했다. '그래, 이러려고 내가 결혼식을 올릴 다짐을 했겠지.'
우리 둘은 벌써 재작년부터 부부다. 혼인신고를 하긴 했지만 피곤한 결혼식을 올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걸리는 게 있었다. 그동안 부모님들이 뿌리신 돈. 속물 같겠지만 이것은 내 선에선 퉁칠 수 없는 복잡미묘한 것이었고, 그래서 최소한의 도리를 하기로 했다. 우리들 편안하게 서울에서 작은 결혼식을 올리고, 그에 앞서 피로연을 진행하는 것. 양가 부모님 모두 오케이해 주었다.
하긴, 3년 전에도 양집 모두 며느리와 사위의 얼굴도 모른 채 혼인신고를 허락한 그들이었다. 좋게 말하면 본인들의 아들딸을 믿은 것이겠고, 반대로 말하면 강산도 변하는 시간 동안 무탈하게 만나 온 둘을 감놔라배놔라 해봤자 듣겠는가 였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무주에서 사백여 명이 넘는 어르신과 축하악수를 주고받았다. 길재(아빠이름) 사위면 술 꽤나 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서 남의 집 사위와 눈을 마주치기 위해 수많은 아저씨할아버지가 필사의 노력을 하였으나, 한 잔씩만 주고받아도 400잔이었다. 우리는 믿음을 배신하기로 다짐했다. 사실상 오늘의 주인공인 이길재 씨도 사위가 술 한 방울 못마시는 알코올쓰레기라며 열심히 방어해 주었다. 그렇게 네 명이 팀을 이루어 환상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뭐니뭐니해도 최고의 킥은 김정미(엄마이름) 씨가 정성스레 끓여 대접해 드린 갈비탕이었다.
사실상 피로연이 메인 이벤트였다. 이번엔 작은 결혼식 차례. 내가 원하던 스몰웨딩의 하객수는 백 명이 채 안 되는 소박한 분위기였으나, 길재 씨의 지인은 서울에도 분포해 계셨다. 서울에는 오지 말아 달라는 아빠의 간곡한 당부의 말에도, 거뜬히 오십여 분이 초과로 방문해 주시면서 내 친구들은 온종일 "이게 스몰웨딩이라고?"를 중얼거렸다.
강력했던 나의 비혼주의는 30대가 되기 전에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결혼식도 두 번이나 치른 것 같은 기시감을 남기며 멋지게 깨졌버렸다.
번외로 한 마디 덧붙여 보자. 우리 엄마는 8년 전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김성수? 이름이 왜 그래? 이름부터 마음에 안 든다." 본인도 김 씨면서 자신의 딸이 3년 이상 사귄 남자친구가 '성이 김 씨라서 별로'라고 말하는 그 이상하고도 당혹스러운 상황. 이유는 간단했다. 그때의 성수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었고, 고된 시골살이에 지쳐있던 현실 엄마는 직업부터 눈에 거슬렸다. 타이밍상 대기업 딱지를 달기 전에 혼인신고를 허락해 준 것은 맞지만, 할 말 안 할 말 다 주고받는 나는 엄마에게 "언제는 이름부터 마음에 안 든다며, 태도가 너무 달라진 거 아니야?"라고 핀잔을 주곤 하는데, 그때마다 되돌아오는 대답은 참말로 어이가 없다. "어머, 김성수 이름이 왜? 이름 너무 예쁘잖아~ 성.수! 이름 얼마나 예뻐. 그리고 김 씨는 대체로 양반 가문이야~"
오빠는 말한다. 어머님의 약간의 뻔뻔스러움이 나와 너무도 오버랩된다고. 우리 오빠는 엄마를 너무 좋아하고 나도 너무 좋아하는데, 희한하게 이 뻔뻔스러운 모습을 가장 사랑스럽게 봐 주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