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범잡에서 어떤 박사가 했던 말이 있다. 신호등은 사람이 법적으로 우선시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법칙이라 좋아한다고. 멘트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비슷한 말을 했을 거다.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횡단보도에 초록색 불이 켜지면, 사람들은 자신의 안전을 믿고 건너간다. 신호등 앞에서는 아무리 센 기계의 자동차라도 사람의 아래에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내가 더 신기했던 것은, 신호등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박사님의 시선이었다.
사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평소에 접하는 무언가라도 다양한 시선으로 보고 싶어서. 책을 통해서 연습하는 거다. 작가의 시선을 읽고, 나의 삶에도 적용해 보기. 꼰대처럼 좁고 편협한 생각으로 살고 싶지 않은 나의 고집을 깨는 도구가 되어 준다. 아직까지 손쉽게 타인의 생각을 빌리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나는 책 말고는 찾지 못했다. 그래서 카프카도 책은 도끼라고 표현했던 것이 아닌가.
종종 성수와 나누는 생각의 교류도 즐겁다. 나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라 디지털엔 젬병이고, 성수는 온라인과 좀 더 친숙하다. 성수는 전자책으로 책을 읽고, 나는 종이책으로 책을 읽는다. 나는 쇼핑을 직접 보면서 하고, 성수는 매일같이 택배 박스가 날아온다. 나는 거리를 걸으면서 꽃과 나무를 보고, 성수는 건물과 도로를 본다. 그래서 서로 나누는 주제가 다르다. 내가 본 게 꽃의 색깔이었다면, 성수는 아파트 집값을 나에게 알려준다. 성수가 온라인 쇼핑으로 매번 실패를 해댈 때, 나는 오프라인 쇼핑의 정확한 장점을 알려준다.
결국 책을 쓰는 작가를 통해서든 연인이나 친구를 통해서든, 타인을 만나야 나의 편협한 시선이 깨지는 것 같다. 언제든지 나의 생각이 바뀔 수 있다는 갈대 같은 마음으로 살고 싶다. 꼭 한 가지의 건강한 생각만 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가 빚어 올린 여러 건강한 시선들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유연한 태도를 취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과학자 김상욱 교수도 말했다. 과학자들은 언제라도 자신들의 이론이 깨질 것을 예상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시시각각 변하는 신호등처럼, 언제든 내 생각이 변할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