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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남의 일기 서른하나 2023. 11. 19. 22:23
성수는 독감으로 잠만 잔다. 나는 아직 독감이 옮지는 않았다. 함께 점심을 먹고, 성수가 낮잠을 잘 때 조용히 집을 나왔다. 이젠 제법 쌀쌀해진 탓에 장갑도 챙겼다. 산책 코스는 언제나 문래공원이다. 이번이 문래에서 맞는 마지막 겨울이 될 것이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잎이 붉고 노란 길을 내었다. 그리고, 그보다 좀 더 화사한 빛을 내는 할머니할아버지 커플이 있었다. 나는 일부러 발걸음을 늦춰 그들의 뒤를 바라보았다. 성수와 나도 항상 손을 잡고 걷는데. 우리의 노년도 저들과 같을 수 있을까.
가구라는 시가 있다. 아내와 나는 방에 놓인 가구처럼 서로 말을 걸지 않고, 그림자와 함께 육중하게 어두워지고 있을 뿐이라는. 둘 다 움직이지 않는 가구가 되면, 서로에게 말을 걸 필요가 없어진다면, 부부라는 이름은 죽은 물건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손을 잡고 리듬을 맞춰 함께 움직이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 발 한 발 배우자의 속도에 발걸음을 늦출 수도 서두를 수도 있는, 그래서 항상 옆에서 걷고 있는 그에게 상냥한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삶의 좋은 동반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