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인 것에는 무서움이 따르는 것 같다. 한 사람만 집착해서 좋아할 때도, 배가 이미 부른데도 계속 입 속에 음식을 욱여댈 때도, 분명 필름이 끊길 만큼 취했는데 술 한잔을 더 따를 때도,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데 번아웃이 올 정도로 일에 목을 맬 때도. 분명 무언가 잘못된 것 같기는 한데, 편안함 속에 나의 가속도를 늦추지는 않는다. 나를 고통의 심연 속에 빠뜨릴 것은 은연중에 아는데도, 지금 당장은 나를 놓아버리는 게 더 편한 것이다.
맹목적인 것에는 편안함이 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삼재를 탓하거나 내가 저지른 잘못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쉽게 용서해 버릴 때 가장 편안한 방법을 찾은 게 된다. 여기서 삼재나 하느님은 맹목적으로 믿을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이성적 사고 회로를 돌리지 않은 채 내 감정으로만 파고들기 좋다. 예를 들어, 내가 김성수에게 한껏 집착할 때는 출근하기 싫은 마음이 강하게 들 때다. 이미 주량을 넘어 소주 한 병을 더 딸 때에는 내일 맡은 발표 자료를 차라리 술병에 걸려 포기해 버리고 싶을 때다.
요즘 세대들은 힘든 걸 못 참는다고 한다. 참 꼰대 같은 소리지만 어느 정도는 맞을 수도 있다. 우리는 고통이 두려워 미리 예방주사를 맞아버리는 세대다. 사회가 너무 불확실하니 취업을 포기하고, 차라리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여행을 가 버리는 시대다. 미래를 계획하기보단 당장 눈앞의 행복을 누린다. 이성적 사고에는 불편함이 따르기 때문이다. 조금만 머리를 굴려봐도 노후에 남아있을 내 저축금은 제로에 가깝다. 그럴 땐 현재를 즐긴다는 그럴싸한 슬로건에 나를 던져버린다.
책을 읽기 싫을 때 쇼츠를 본다. 맹목적인 눈빛으로 편안함을 누린다.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나는 금세 시간을 빼앗겼다. 운동하기 싫을 때 술을 마신다. 맹목적인 알코올로 편안함을 누린다. 네다섯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나는 또다시 시간과 건강까지 빼앗겼다. 생각하기 싫을 때 폭식을 한다. 맹목적인 음식으로 편안함을 누린다.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소화장애를 얻고 또다시 건강을 앗아갔다. 편안함은 왜 나에게 고통을 주는 걸까. '맹목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