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달간 호텔에 자주 묵었다. 성수의 회사에서 제휴 시설을 제공해 주는데, 넣어 보고 당첨되면 갈 수가 있다. 그게 아니었다면 우리 둘의 월급으로 비싼 호텔은 언감생심이었을 것이다. 성수가 짤리기 전에 무조건 많이 우리는 호캉스를 찔러보았다. 부디 성수가 오랫동안 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요즘 MZ세대들의 소비 행태를 보고 신랄하게 비판했던 걸 본 적이 있다. 호캉스, 해외여행, 오마카세 등 다양한 경험을 한다는 목적으로 자기 월급보다 더한 지출을 하는데, 사실 그건 그냥 돈을 쓰는 것뿐이라고 한다. 진짜 경험은 고통을 끈기 있게 감내해 본 경험이라고. 그러니까 우리 세대들은 '경험한다'는 말의 의미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굉장히 공감한다. 하지만 사실 진짜로 좋은 호텔은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해 주기도 한다.
일단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나와 기본적으로 태도와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다들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여유가 넘쳐흐르며, 시간을 그냥 자연스럽게 보낼 줄 안다. 시선이 분산되어 있지도 않다. 나도 한 조곤조곤은 하는데 그것과는 다른, 태생부터 돈이 많았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고나 할까.
그런 분위기를 풍겼던 호텔 중 가장 좋았던 세 군데를 꼽자면 워커힐, 그랜드하얏트, 파라다이스시티였다. 감사하게도 숙박비는 거의 무료에 가깝지만 밥값, 커피값, 술값은 성수의 월급에서 제외된다. 예를 들어 솔로지옥에서 천국으로 묘사되었던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의 경우, 저녁 뷔페값이 인당 12만 원이었다. 한 끼 주제에 너무나도 비싼 가격이었지만 나는 성수에게 다음과 같이 웃긴 말을 지껄였다. 이런 걸 경험해야 부자가 되는 거라고, 그러니까 돈을 쓰자고! 사실은 그냥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처지에 안 맞는 돈을 내고, 그러니까 한 끼 두 사람에 24만 원을 주고 뷔페를 먹었다. 그리고 우린 24만 원어치의 부채감을 해결하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접시를 계속해서 채웠고, 술도 거의 들이부었으며, 곧 잠을 잘 시간인데도 커피까지 야무지게 챙겨 마셨다. 터질 듯한 배를 부여잡으며 레스토랑을 나오는데, 성수가 말했다. 부자들은 적당히 먹는데 우리들은 그러지 못한 것 같다고. 이런 걸 배워야 진짜 부자인 게 아니냐고. 맙소사. 나는 썩은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심장을 콕콕 찔렀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한 것 같다. 돈만 많다고 부자가 아니라, 돈이 원래부터 많아서 여유가 넘치는 그 태도를 배워야 부자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우린 부자가 아니다. 아주 부족하게 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넉넉하게 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깨끗하고 쾌적하고 고급진 호텔에서 하루를 보내는 건 기분이 아주 좋은 일이다. 물론 청소에 진심인 둘이 살기에, 깨끗하고 쾌적하고 나름 고급 아파트인 롯데캐슬로 돌아오지만, 그 안에 사는 둘이 고급지지는 않다.
부자가 되려면 웬만하면 서울에, 되도록이면 부자 동네에 붙어살아야 한다는데, 우린 곧 1년 내로 경기도로 이사를 간다. 가끔 김성수와 내 집 마련보다는 서울에 달라붙어있었어야 하는 게 아니나며 고민도 했지만, 나이가 들다 보니 우리도 처지에 맞게 사는 게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일이란 걸 깨달았다. 호텔에서 돌아오면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것마냥 '스윗마이홈'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대로 소파에 털썩 온몸을 파묻으며 생각한다. 결국 마음이 편해야 진짜 부자가 될 수 있겠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