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
가끔 트로트를 듣다 보면, 분명 처음 듣는 곡인데도 그다음 멜로디를 정확하게 따라 부를 때가 있다. 이 정도면 거의 모든 트로트가 서로서로 표절한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곤 한다. 한편, 김성수가 하는 말 중에 코웃음을 유발하는 단어들이 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 단어를 다른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쓰고 있을 때, 이상한 것에 전염되었다는 생각에 섬뜩할 때가 있다. 그런 단어로는 에바쎄바참치, 쌉가능, 극딜 등이 있다. 더 최악의 경우도 있다. 어설프게 주워들은 상식을 다른 사람 앞에서 아는 것마냥 써먹었을 때, 뒤늦게 오류를 자각하고는 이불킥하고 싶은 순간들도 있다. 결국 내가 하는 말 중에,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말은 과연 몇 개나 될까?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배운다. 그럼 그 말을 담아낸 나는 그냥 다른 사람 그 자체가 아닐는지.
2 맨발
가끔 문래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양말을 벗고 맨발로 흙 위를 걷는 동네 주민들을 볼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마음 한구석에 자연과 동화되기를 원하는 소망을 품고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동물은 자연 상태와 충분히 동화되어 살아간다. 예를 들어 동물은 욕망에 충실하다.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는다. 반면에 인간은 욕망을 유예시킬 수 있다. 당장 졸음이 쏟아져도 잠을 미룰 수 있고, 꼬르륵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도 다이어트를 위해 먹을 것을 참을 수도 있다. 이렇듯 우리는 욕망을 미루고, 그만큼 정신이 분열되기도 하며, 때문에 반성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고, 소중한 소망들을 충족시켜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 우리는 종종 지치기도 한다. 차가운 흙 위에 맨발을 대고 싶은 것처럼, 우리도 가끔은 지친 마음을 자연에 접촉시키고 싶은 것 같다. 본능에 충실한 어린아이에게 사랑스러움을 느끼듯, 우리가 애완동물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는 이유도 같은 걸까?
3 일기
일기를 쓰는 행위는 한 발짝 떨어져서 나를 보는 행위이다. 내가 나 안에만 갇혀있을 땐 자각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또 다른 내가 되어 타자의 시선으로 보게 된다. 물론 일기에도 거짓말을 쓸 때가 있다. 그만큼 나를 있는 그대로 자각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겠다. 나의 무의식을 꾹꾹 눌러 담아 방어기제로 튀어 오르지 못하게 만드는 것처럼, 언제나 감추고 싶은 나의 모습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일기를 씀으로써 가끔은 나를 마주 보게 된다. 주워 들었던 말들을 내 속에 묵혀 두었다가, 나만의 언어로 재구성할 수 있을 때, 그때 그래도 나만의 것이 탄생한 것 같다. 그 뿌듯함에 일기를 쓴다. 내 주변에 대한 나만의 시선들. 내가 사람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 방식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밌다. 그럼 일기는 또 하나의 나를 임시로 세워 두어, 나는 물론 타인들을 관찰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어주는 걸까? 일기의 용도는 나에게 그런 것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