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팩폭을 잘하는 편이다. 도가 지나치지 않도록 컨트롤을 하긴 하지만, 할 말은 꼭 해야 하는 성격상 그게 힘들 때가 많다. 이런 내가 유용한 경우가 있으니, 바로 연애 상담을 할 때다. 사랑하는 이와 다툼 후,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 친구에게 전화를 걸면, 백이면 백 다들 친구 편을 든다고 한다. 나는 좀 다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보다는 상대방 편을 드는 때가 더 많다. 편을 든다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알려준다는 게 더 맞겠다. 의외로 냉정히 할 말을 하고 나면, 친구의 기분이 차분해지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잘못이 있긴 하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를 써먹는다. 객관적인 판단이 듣고 싶을 때.
싸움이 일어나는 대부분의 이유는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다. 나를 소홀히 여기는 것 같고, 나랑 노는 것보다 친구들이랑 만나는 게 더 즐거워 보이고, 데이트하는 시간이 부족한 것 같을 때. 요점은, 나는 지금 그 사람을 열심히 사랑하고 있는데, 왜 그 사람은 그만큼 나를 생각해 주지 않는지 따져 묻는 것이겠다. 이때의 나는 오히려 정반대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오히려 내 친구가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본인의 주장은 자기보다 상대방의 사랑의 크기가 더 작다는 것인데, 나의 느낌으로는 지금 한껏 자기만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는 사실이다.
사랑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는 것 같다. 스스로에게 향하는 사랑과, 타인에게 향하는 사랑.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스로를 먼저 사랑하는 게 되어야만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 바꿔 말하면 떼 아닌 떼를 쓰는 내 친구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게 안 돼서, 오히려 자기 자신만 엄청 사랑하려고 애쓰는 것 같아 보인다. 상대방이 본인을 채워주지 못하니, 방어적으로 스스로가 더 채워지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말은 본인이 상대방을 더 사랑한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이 본인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 이 미묘한 차이를 차마 말하진 못한다. 나는 이런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그 사실이 친구에게 너무 가혹한 것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내가 더 많이 사랑하고 있다고 강박적으로 계속 되뇌이고 있을 때, 실제로는 내가 상대방을 더 사랑하기보다는 오히려 나만을 아끼고 신경 쓰고 있는 건 아닌지 반추해 볼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사랑받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어린아이처럼, 노력 없이 주는 사랑은 없으면서 받기만을 원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거꾸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의외로 성수에게 미친 듯이 사랑을 갈구할 때, 나의 상태가 안 좋은 경우가 더 많았다. 반대로 나의 컨디션이 좋을 때는 성수를 더 아껴주고 보다듬어줬다. 결론은 같다. 내가 스스로 채워질 수 있을 때 상대방도 채워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