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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잘살자남의 일기 서른하나 2023. 10. 20. 09:04
서울에 살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점은, 힘든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시골이라고 다를 바는 있겠냐만, 내 말의 요는 정신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 똑같이 힘들어도 시골에는 힘듦 속에 재미는 있다. 밭일이든 품앗이든 이웃을 만나서 술 한잔 걸치는 것이든, 만날 사람도 많고 할 일도 많아 우울증에 걸릴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 나름 시골 출신인 내가 우리 부모님한테서 얻어 낸 정보를 토대로 내리는 결론이다.
"요새 중장년층 우울증이 많대. 그런데 엄마 아빠는 너무 바빠서 우울증 걸릴 틈도 없을 것 같아."
그 둘은 크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 말이 딱 맞아, 당장 내일 마당이라도 쓸어야 해. 서로서로 품앗이하는 행사도 얼마나 많은데. 당장 내일도 옆집 아저씨 결혼식 잔치 때문에 5만 원 나가게 생겼다. 그래서 너는 언제 우리가 뿌린 돈을 거두어 줄 거니?"
"......."
오히려 도시에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생각해 보면 가끔 서울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약간 지친다. 힘든 일이 참 많다. 대부분 회사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고, 그중 8할은 인간관계가 그 이유다. 그런데 그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법이 다 똑같다. 퇴근 후 지친 몸을 방 안에 뉘여 휴대폰을 보거나 배달 음식을 시켜 맥주 한 캔을 하는 것이다. 이건 대체로 혼자서 이루어진다. 룸메이트가 있거나 가족이 있더라도 소통은 휴대폰과 하니 혼자가 맞다.
매일 나의 퇴근길에서도 장관을 구경할 수 있다. 바로 24시간 순대 국밥집에서다. 모든 테이블에 셔츠를 입은 가장들이 각자 한 명씩 앉아 뜨끈한 국밥 한 그릇에 차디찬 초록병 한잔을 넘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에겐 가장 큰 위로의 장소일 거다. 붐비는 사람들 틈에서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으로. 그래서 국밥집이 참 고마웠다. 하지만 크게 다르진 않았다. 각자 앞에 비스듬히 놓인 스마트폰 덕에 간혹 웃음을 짓고 있지만, 나는 그게 왜 그리도 쓸쓸해 보였을까.
다음은 소라와 나눈 대화의 일부이다.김성수와 내가 가장 자주 나누는 대화 주제다. 무탈한 마음, 무탈한 정신 상태, 무탈한 건강 상태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소 단위가 아닐까.
물론 힘들 때도 많을 거다. 그리고 그 힘듦이 오히려 다른 이에게 위안이 될 때도 분명 있다. 하지만 내가 짧은 31년의 인생을 살아 보니, 누구라도 돌아와 쉴 수 있는 여유 공간을 만들어 두는 게 더 그들에게 유용했다.
나는 이런 공간을 항상 열어두는 안락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