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싶었다. 원작이 있는 스토리를 각색해서, 청소년 타깃의 추리소설을 편집하던 중이었다.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은 각색하는 걸 꺼리기 때문에, 대체로 초보 작가들에게 글을 의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부분 초보 작가들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기보단 필명을 더 많이 쓴다. 당당히 이름을 내걸기엔 부족함을 잘 아는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해했다. 진짜 작가들은 자신의 글을 쓰고 싶어 할 테니까. 게다가 원작이 있는 경우, 원작사의 까다로운 조건들을 모두 수용해 줘야만 한다. 기껏 창의력을 발휘해 작가가 각색해 놓으면 원작사에서는 NG, 수정, NG, 수정...
문젠 내가 이 책만 담당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편집부 모두가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 낸다. 진짜로 문제는 길을 잘 안내해 줄 수 있도록 요술을 부릴 수 있는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내 역량이 넘어가는 듯했고, 난 언제나 그랬듯 힘들게 일하기 싫어했다. 부족한 역량만큼 일에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하는데, 난 퇴근 후의 딴짓이 너무 하고 싶었다. 왜, 공부하기 싫으면 딴짓하는 게 그렇게 재밌지 않은가. 재즈 솔로도 재밌고, 산책도 더 자주 하고 싶고, 깊이 있게 파 들어가 보고 싶은 철학자도 있고... 등등 취미를 직업으로 선택했는데 책을 만드는 일에 온 힘을 빼앗겨 정작 만들어진 책을 읽진 못했다. 이 일이 나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퇴사를 진심으로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