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학창 시절도 똑같았다.
남자는 경기를 뛰고, 여자는 앉아서 응원을 했다.
생각해 보면 난 체육을 좋아했다.
쌍쌍축구를 할 때도 난 여자지만 골을 넣고 싶었고, 키가 작아도 레이업 슛을 배울 때 즐거웠다.
운동신경이 아주 없는 편은 아니었는데, 지금도 오락실에서 농구를 할 때 마지막 라운드까지 공을 넣곤 한다.
우물쭈물거리다가 응원만 했지만 많은 여자들이 운동의 즐거움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남자들이 개운하게 축구경기를 마치고 오면, 거기서 느껴지는 기운들이 왠지 부러웠다.
운동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때가 있다.
배드민턴을 치다 보면 티카타카가 기가 막히게 되는 순간이 있다.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그 순간.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 루틴이 몸에 익어 습관이 들어야 한다.
그럴 땐 머리를 건너뛰고 몸이 먼저 반응을 하는 것 같다.
간혹 프로들의 경기를 보다 보면 '페더러 모멘트'와 같은 어떤 순간, 기가 막힌 동작들을 목격하게 된다.
마치 그 순간만큼은 몸뚱이가 그의 주인에게 완벽하게 협력을 해 주는 것만 같다.
뇌와 몸으로 연결되는 이중 절차를 확 건너뛰고, 뇌의 지시를 받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 같다.
아이는 생각이 덜 발달해서 손과 발을 컨트롤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손이 아주 많이 느리고, 걸음도 부정확하다.
나는 컴맹이기 때문에 낯선 프로그램을 깔려고만 해도 클릭하는 행동 자체가 느려진다.
반면에 장구나 피아노를 칠 때는 박자나 음을 맞추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페더러가 자기 몸을 유연하게 쓰고, 또 완벽하게 컨트롤해 내는 것뿐만 아니라
몇 수 앞서 예측하는 플레이로 승리를 얻어가는 것처럼.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데는 그만큼의 생각의 성숙이 필수 조건이 되는 듯하다.
몸과 머리가 완벽하게 일치를 해서 만들어 내는 그 '모멘트'를 나도 자주 갖고 싶다.
완벽한 협응 능력으로 무아지경이 되곤 하는 그 치열한 경기들을 어렸을 때 자주 경험해 보지 못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