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둘 다 차분하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자존감도 꽤 높은 편이다.
개인의 행복이 우선이니 남과 비교하는 일도 적었고, 감정대로 다 표현을 하는 편이라 마음에 담아 둘 불편함도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서로 대화가 많았다. 매일같이 함께 일어나고 잠에 드는데도 대화는 항상 즐거웠다.
정신과 상담을 결심한 자초지종은 이렇다.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의 심리'라는 썸네일을 보았다.
개인적으로 몇몇 인간들이 떠올라 '그래, 도대체 니네는 왜 그런 거니' 싶은 마음에 영상을 눌렀다.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평소에 긴장감이 낮은 사람이 약속시간에 대한 개념도 떨어져요. 이런 사람들은 평소에 주의집중력도 떨어진 경우가 많고요. 드라마 한 편을 집중해서 다 못 본다거나, 공부를 시작할 때 딴짓을 한참 한다거나. 그런데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건 불안감이 낮다는 말과도 같아요." ※ 내 마음대로 요약 주의
연애 초, 김성수는 약속시간에 늦을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화를 냈다. 약속시간을 웬만큼 지키는 나로서는 '지각=배려 없음'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도 시간은 소중할 텐데, 내 할 일을 먼저 하느라 내 시간은 지키고 상대방의 시간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게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상을 보다가 김성수에게 핀잔을 살짝 주었다.
"오빠도 참 약속 못 지켰지." 지금은 누구보다도 약속을 잘 지킨다.
김성수는 코드를 짜면서도 영상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공감이 너무 가. 나도 가끔 주의집중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때 많거든. 공부를 해야 하는데도 안 하고. 멀티도 잘 안 되고."
"오빠 이직 준비할 때 카페에서 아침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있었잖아. 어떨 땐 나랑 퇴근도 같이 하고. 그 정도면 주의집중력이 엄청난 거야. 멀티가 안 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김성수는 자기가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계속 어필하고 있었다. 사실 요즘 자기와 함께 입사한 동기들이 죄다 서울대 출신에 삼성 출신들이라 남보다 더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나는 스스로 이겨내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환경을 바꿔 보고 싶어. 상담을 한번 받아 볼래."
"그래, 재미 삼아 받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그럼 나도 할래. 강박으로."
그런데 나는 사실 김성수의 결과가 괜찮을 것을 백 퍼센트 확신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런 판정을 받는다는 건 '일상생활을 하는 것에 있어서도 무리가 있는 정도'를 포함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는 좀 확신했다. 난 분명 강박이 있었다.
게다가 평소에 김성수는 불안감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확실했고, 반대로 나는 긴장감이 높은 것이 확실했다.
타고난 기질이 얼마큼 영향을 주었을지도 궁금했다.
서로의 감정을 대화 나누는 데 즐거움을 갖기도 하는 우리는 괜스레 설레기까지 했다.
어제 ADD(혹은 ADHD) 관련 정신과 상담을 받고 온 김성수는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심하게 테스트를 잘 봐서 민망해했다.
컴퓨터 화면에 비치는 도형을 가지고 찾고자 하는 도형이 깜빡일 때마다 스페이스를 누르는 것이었는데, 40분을 넘게 하면서도 집중력 한 번 안 떨어뜨리고 정확하게 맞추었다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며 웃어댔고 테스트 전에 사전 설문조사 같은 것은 없었냐고 물었다.
우울증과 불안도 정도를 검사하는 종이를 각각 받았는데, 문항들이 너무 극단적이어서 자기는 거의 전부를 '해당 없음'에 체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나는 또 한 번 그럴 줄 알았다며 깔깔깔 웃어댔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ADHD는 무슨. 오빠는 쫄보여서 충동성도, 과잉행동도 없어. 그래도 일반 사람보다 불안감이 많이 낮아 보여서 나도 굳이 말리진 않은 거야. 평소에 잠도 너무 쿨쿨 잘 자서."
하지만 김성수건, 나건, 현대를 살아가는 그 누구도 크고 작은 문제점 하나 없이 살아가는 이들은 없다.
우리는 불쑥불쑥 어리숙한 행동과 생각을 하는 자신을 자주 만나곤 한다.
누구나 마음속에 자신의 어린아이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자라지 못한 아이에게 말을 한번 걸어보고 싶었다. (*책 페인트 중)
나는 예약을 바로 잡을 수가 없어서 4주 후로 가장 빠른 예약을 했다.
다들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 용기를 냈으면 하는 마음에 굳이 이 글을 썼다.
그럼, 이유리의 강박증은 과연 얼마만큼의 사연을 들려줄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