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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남의 일기 스물아홉 2021. 7. 13. 09:37
간접 경험이 된다느니, 나를 찾을 수 있다느니 이런 고리타분하고 진부한 표현은 배제한다.
사실 이런 나도 예전 일기에서 내가 책을 읽는 이유를 '나를 나로 세우기 위해서'라고 썼다... 오마이갓...
내 마음속에 있는 걸 문장으로 발견하며 위로 또는 공감의 기쁨을 얻는다고.
혹은 그 느낌들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가 어느 순간 현상을 바라볼 때 시선의 다각성을 얻게 된다고...... 오마이갓2...
요즘 내가 책을 읽는 이유를 적어 보려고 한다.
사실 잘 안 읽지만 그래도 애는 쓰는 이유.
사 놓고 더럽게 안 읽지만, 그래도 서점에 들러 굳이 또 사는 이유.
진부하게 시작한다. 정보의 홍수이다.
유튜브를 통해, 영화관에서, 유명인의 스피치를 들으며 다양한 경험과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정보를 받아들이며 생각을 하긴 한다.
뭐 책이라고 다른가? 책이건 , tv건, 인터넷 미디어건 한방향 소통이긴 마찬가진데.
그런데 미세하게도 다른 점은, 책은 괴롭도록 내가 능동적으로 해석해서 따라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일단 글자와 나 사이의 공간이 굉장히 넓다.
주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 그 여백이 굉장히 넓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사이를 어떻게든 내가 상상하며 채워야 하고, 또 계속해서 그 사람의 의도를 따라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굉장히 힘들고, 또 지루하다. 평소의 나의 생각과는 또 다른 생각이니까. 일단 내 생각을 깨야 하니까 그것도 좀 불편하다.
물론 정보를 압축해서 재미있게, 효과적으로, 빠르게, 손쉽게, 어쩌면 유튜브가 책 한 권을 읽는 것보다 더 효율적일 수는 있다.
그런데 나의 능동성은 어쨌든 책보다는 최소화되어 있다.
유튜브는 가만히 있어도 다채로운 색과 사운드로 나를 즐겁고 편안하게 해준다.
알고리즘이 참도 내 취향에 맞게 편안히 누워만 있어도 쾌락을 떠먹여준다.
하지만 사람을 사람이도록 만드는 것은 귀찮은 움직임과 느림의 미학들이다.
느려야 제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상식적으로도 빠르게 생각한다는 것이 제대로 다 생각한다는 것은 아닐 거다.
빠른 생각들은 일반적으로 중요한 것들만 빠르게 붙잡도록 만든다.
어쨌든 그래서 책을 읽는다.
내가 아는 한 느린 호흡을 기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책이다.
글자와 나 사이에 놓인 여백을 스스로 채워 가면서 괴롭게 상상하며 읽는 것.